누가 이동국에게 골을 강요하는가?

2007. 3. 5. 11:46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지난 주말 뉴캐슬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이동국의 플레이는 소위 '고만고만한' 수준의 활약이었다. 특별히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지도 못했고 득점에 근접한 슈팅도 없었으며, '이것이 돋보였다'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줄만한 플레이도 나오지 않았다.

우려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언론들이 "골을 넣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점을 너무 강조한다는 것이다.

물론... 스트라이커로서 골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없다.
나 역시 이동국이 하루 빨리 골을 터뜨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팬들도 그런 상황이니 이동국 본인이야 오죽 하겠는가?

그러나, 골 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이동국은 아직 '후보 선수'라는 점이다.
이것은 실력여하를 떠나서 팀에서 현재 이동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좋은 후보 선수'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주전과 후보는 어떻게 다른가?
주전 선수에게는 선발 출장의 기회가 주어지며 자신의 스타일 대로 차분하게 결론을 맺을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반면에 후보 선수는 투입되는 상황과 이유, 그에 따른 미션이 세팅 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만큼, 선발 출전 선수에 비해서 스스로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 나가기 보다는 감독의 투입 의도가 더 명확히 반영된 플레이가 요구된다.

뉴캐슬과의 경기를 되짚어 보자.
후반 중반에 이동국이 투입되는 시점까지 미들스브로는 공격의 활로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간간이 주어지는 역습찬스가 있긴 했지만 여느 경기에 비해서 스트라이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공의 빈도가 현저히 낮은 경기였다. 야쿠부와 비두가 또한 이전 경기에 비해서 수비수들 사이에 고립되는 모습이 많이 보였고...

이런 상황에서 이동국을 투입한 감독의 의도는 무엇일까?

물론 그가 직접 득점을 하여 소중한 결승골을 뽑아 주기를 바랬겠지만, 그 보다 앞서서 공격의 활로가 막히는 단조롭고 미리는 상황에 변화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많은 영역을 커버하지는 못하지만 골 결정력과 순간 동작이 뛰어난 비두카를 그래도 두고, 이동국은 야쿠부를 대신해서 비두카에게 보다 자주, 보다 좋은 찬스가 만들어 지는데 보탬이 되었어야 했다.

즉... 골은 포기하더라도 좀 더 넓은 영역을 부지런히 커버하면서 비두카에 집중된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고, 왼쪽 측면의 다우닝과 그날 경기에서 거의 유일하게 제몫을 했던 보아텡의 공격 기회가 더 살아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이동국에게 주어진 임무였다고 생각된다.

헌데... 아쉽게도...
이동국은 남은 시간 동안 득점에 좀 더 치중하는 모습이었으며, 비두카와 동일 선상에서 종종 겹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으며, 상대의 역습 찬스에게 수비 가담이 늦었고, 미드필더와 최전방 공격수 사이의 빈 공간을 커버하고 비두카의 기회를 살려주는 플레이에는 소홀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팬들과 언론이 그에게 골을 주문하고, 이동국 자신 또한 하루 빨리 첫 골을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다급하겠지만... 골을 넣고자 하는 킬러의 본능이 꿈틀거리겠지만...
이동국으로서는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후보 선수'의 역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는 당분간 후보다'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다.
골을 넣기 보다는... 단 1분이라도 출전시간을 늘이고, 감독의 투입 의중과 자신이 투입되는 시점의 상황과  목적을 확실히 이해하고, 심지어는 윙 플레이라도 서슴치 않으며, 다음 경기에 다시 리저브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후보 선수이다.

이기는 경기에서 막판 1분 전에 투입 되었을 때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 주면서 승리를 확정하는 소중한 1분을 버텨줄 줄 알아야 하며, 전체적으로 팀 스피드가 떨어진 상황이라면 다짜고짜 많이 뛰면서 지친 선수들의 체력을 대신해야 한다.
1점차로 리드하는 상황에서 투입되었다면 상대 수비가 공격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오프 사이드를 감수하면서도 빈번하게 대시를 하거나 위력적인 중거리 슛으로 상대 수비를 묶어 놓을 줄 알아야 한다.
2점차로 리드하고 있다면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골을 노릴만 할 것이다.

그러면서... 출전 기회와 출장 시간이 늘어나게 되고...
그러면서 또 골 기회가 생기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온전하게 자신만의 선발 자리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1년이나 2년이 걸리는 지루한 게임이 아니다.
불과 몇 게임을 거치면서도 충분히 그런 기회는 생길 것이며, 수 많은 게임을 치르는 동안 수 없이 많은 기회가 반복될 것이다.

혹자는 이천수가 스페인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한 것은 골을 통해 스스로를 각인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천수 역시 골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최대한 빠른 시간에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홀로 외로운 싸움만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감독이라면 골을 터뜨리는 선수 보다는 팀의 승리를 만들어주는 선수를 더 좋아할 것이다.

이동국... 당분간은 '원 포인트 미션'에 충실한 플레이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주어지는 출전 기회마다 골에 굶주리기 보다는 자신이 투입되는 상황과 목적을 이해하고, 어떤 플레이를 통해서 팀에 보탬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골?
아무것도 아니다.
능력있는 스트라이커라면, 많은 시간을 뛰고, 동료들이 기꺼이 마지막 패스를 보낼 수 있다는 믿음만 심어준다면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이기에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어쨌든 이동국은...
같은 시간을 뛰더라도 박지성보다는 많은 골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포지션을 부여 받지 않았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