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봉 심기 대작전 - 집안에 못 자국이 없어야 한다!

2011. 9. 14. 11:32사는게 뭐길래/집짓기 & DIY


저희 부부의 추석 연휴는 집짓기와 함께 다 보냈습니다.
집짓는 곳은 단양군 영춘면, 부모님 댁은 원주. 대략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금요일 저녁 늦게 부모님댁에 갔고, 토-일-월 3일간 집짓기 현장으로 출퇴근 했습니다.
화요일(13일)에는 현장에서 바로 집으로 올라왔구요.

토요일에는 사실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쬐금 일했습니다.)
오전에 도착해서 한주간의 작업 내용을 살펴보고 점심 식사를 하러 갔는데...
점심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식사중인(& 반주 한 잔) 목수님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 하면서 밤샘을 쳤다는... 믿기지 않는 말을 하시더군요.
예상보다 작업이 늦어져서 감독님이 엄청 스트레스 받으셨고, 도저희 그대로 작업을 끝낼 수 없다면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그렇게 밤을 새고 말았다네요.
밤 새고, 작업장 정리하고, 씻고... 그 상태로 집에 가기에는 무리라서 늦은 아침식사 겸 낮 술 한 잔 중이었던거죠.
얼떨결에 저도 동참해서 한 잔, 두 잔...
결국 술이 깰때까지 현장에서 잠만 자다가 그냥 집에 갔습니다. T.T

그러나, 일요일(11일)부터는 진짜 제대로 작업 개시!



사실 저희가 직접 할 수 있는 작업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목수님들이 할 정도로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작업량은 상당한... ^.^

못이 눈에 띄는 걸 유난히 싫아하시는 깐깐 카탈한 현장 감독님!
 마루나 벽에 못을 박을 때는 못 자리마다 구멍을 내고, 못 대가리가 나무에 살짝 묻히도록 나사를 박습니다.
그리고, 그 구멍은 목봉으로 마무리를 하지요.



목봉에 본드를 묻혀서 박아 넣고, 본드가 굳은 후에 윗 부분을 잘라내면
위의 사진처럼 못 자리도 막아주고 예쁜 포인트까지 생기게 됩니다.

나무에 손상이 안가도록 신경을 좀 써야 하고 손이 많이가는 작업이긴 하지만, 많이 힘들거나 어려운 작업은 아닙니다.
이런 간단한 목공 작업조차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신기하고 재밌기까지합니다.

구멍찾아, 목봉들고, 본드 칠해서, 망치고 콕콕, 굳은 후 얇은 톱으로 슥슥슥....
요정도 일은 굳이 목수님들 힘 빌리지 않고 저희끼리도 한 번 해볼만 하지요?
여자들이라고 크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른 여자가 하는 것은 못봤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는데...
공대 나온 여자.... 집 지을 때 한 몫 합니다. ^^




문제는... 구멍이 엄청 많다는 사실!
마룻바닥, 계단, 벽.... 집 내부 마감하면서 못 안쓰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못들 중에서 외부로 노출되는 것들은 죄다 이렇게 목봉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



대략 저희가 작업할 구멍들을 어림짐작으로 세어보니... 약 900 ~ 1천개!
도 닦는 마음으로, 인생 수양하는 마음으로, 극기훈련에 인성배양하는 겸허한 마음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못이 박혀있지 않은 곳에는 직접 구멍을 뚫고 나사못도 박아가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추석 때 문 여는 식당도 없고...
행여나 있을지 모르는 식당을 찾아서 산골 마을을 헤대고 다닐 수도 없고...
아예 도시락을 챙겨 왔습니다.
몇 가지 반찬에 식은 밥이지만... 일하는 중간에 먹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습니다!


목봉은 위아래로 둥근 모양입니다. 끝 부분이 둥글어야 구멍에 쉽게 들어가겠죠?
구멍을 메운 후 위로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내면, 왼쪽 사진처럼 잘라낸 단면은 평평하고 반대쪽에는 둥근 부분이 남습니다.
그러면, 다시 둥근 부분쪽으로 구멍을 메우고 나머지 부분을 잘라냅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이렇게 목봉 하나로 구멍 두 개를 메우게 되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목봉이 모자라더군요.
부랴부랴 읍내(면 사무소 있는 곳)에 가니, 마침 문을 연 철물점이 있어서 물어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런거 없습니다!"
 
그리하야... 어쩔 수 없이 뭉툭한 목봉 조각을 사포로 일일이 갈아서 재활용 했습니다. T.T
(이번에도... 공대 나온 여자가 많은 일을 했습니다. ^^)




점심 먹고난 후의 나른 함...
곧 완성될 우리 집 마뭇바닥에서 시원하게 낮잠도 한 숨 자고...
일하는 겸 놀이하는 겸 하면서 목봉을 심어 나갔습니다.




1천개쯤 되는...
끝 없이 아득해 보이던 구멍들도 이틀여를 맘 먹고 작업하니까 다 되더군요. ^.^
안하던 일을 며칠 했다고 팔뚝이 뻐근하고 손아귀가 뻑뻑하긴하지만, 재미있고 보람된 작업이었습니다.

뭐... 마루에 사포질하고 오일 바르는 작업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약간 겁이 나기도 하지만...
내 집에 내 손으로 작업한 곳이 한 부분은 있어야지요. ^^

...........

PS) 거의 다 되었습니다.
딱 경기종료 5분전인데...

집짓기는 축구 경기가 아니라 농구 경기라는 걸 몰랐네요.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