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바사 to 다르에스살람 - 버스가 사람 잡겠네!

2010. 5. 23. 05:22월드컵 여행 - 2010, 케냐에서 남아공까지/2. 탄자니아

[5월 21일]

몸바사에서 다르에스살람까지의 버스 여행!
진짜로 죽여주는(?) 버스 여행이었습니다.
제가 하루 동안에 10만년은 늙어 버릴만큼 죽여주는 여행이었습니다.

일단, 출발부터 속을 썩이더군요.
전날 몸바사 도착하자마자 아침 8시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했지요.
시간 맞춰 나갔더니 버스에 문제가 생겨서 10시에 출발을 한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호텔에 가 있으면 자기네가 시간 맞춰서 데려 오겠다고 했습니다.

한 발 양보하고 호텔로 갔습니다. 그리고, 말한 대로 픽업을 와 주더군요.
음... 약속은 지키는 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0시에 출발한다는 버스...
움직일 생각을 안하네요. 곧 출발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 요지부동입니다.
그냥 내려서 비행기로 갈까하는 생각도 해 보다가,
결국은 이게 아프리카의 모습이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견뎌냈지요.
푹푹 찌는 날씨에 땀이 차 오르고 지루함에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이야기할 상대도 없고, 말도 안통하고...
그렇게 하면서 고문같은 6시간을 보내고, 오후 2시가 되어서와 버스가 출발을 했습니다.
(그 동안 버스를 수리하고 있었다는... T.T)

...

버스가 출발한지 한 시간이나 됐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내립니다.
옆에 보니까 화장실 비슷한 건물이 있어서, 저는 사람들이 화장실 가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향하는 곳은 선착장이었습니다.
적당히 눈치로 때려잡고, 옆에 있던 착해 보이는 아줌마한테 달라 붙어서 손짓 눈짓...
대강 짐작해 보니까 버스 따로 사람 따로 만을 건넌 후에 다시 버스에 탄다는 듯!
이미 페리에는 수백명은 족히 돼 보이는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서 있었습니다.

페리로 만을 건너고, 다시 얼마간 걸어가니까 노점상이 즐비한 거리가 나오더군요.
물이나 음료수를 사 마시는 사람도 있고, 그냥 땡볕만 피해서 그늘에 서 있는 사람도 있고...
조금 있으니까 버스가 오더군요.
다시 버스를 타고... 고고씽!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버스거든요.
짐 반 사람 반으로 꽉 차고, 복도 사이 짐 위에 앉은 사람도 있습니다.
에어컨 안되는 건 기본. 승차감이란 단어는 사전에 없음.
언뜻 봐도 우리나라에서는 폐차 연한이 지났어도 훨씬 지났을 중고 버스.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 쾌적함의 반대쪽 구석에 있을 법한 눅눅한 냄새...

와~
근데여... 밖에 보이는 경치는 사람의 숨을 멋게 만들 정도로 죽여주는 겁니다!
완행 버스를 타고 세계 최고의 국립공원 안을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달려도 달려도 그런 풍경은 멈추질 않습니다.
우리가 TV 속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아프리카 시골 모습, 싱그럽고 광활한 열대 자연의 모습,
그리고 거기서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버스는 몸과 머리를 물리적으로 죽여 주고
보이는 경치는 가슴을 감성적으로 작살내 주더군요.

 





그렇게 2시간쯤 갔을까...
드디어 케냐-탄자니아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육로 여행의 묘미 중 하나! 걸어서 국경 넘어가기!
케냐의 국경마을 룽가룽가(Lungalunga)에서 버스를 내리고, 케냐 출국 수속을 마친 후,
그대로 걸어서 국경을 통과한 후 탄자니아 입국 수속을 마칩니다. (입국 비자비 $50)
그러면, 탄자니아의 국경 마을인 호로호로(Horohoro)에 도착합니다.

호로호로에 들어가면 간단한 음식을 파는 노점상, 음료수나 물을 파는 어린 아이들,
환전꾼들이 각자 자기 용무대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심하게 호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적당히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너무 경계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곳은 국경초소기 때문에 경찰이 늘 지척에 있으니까요.
제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순박합니다. 그리고, 주로 육로로 운송하는 화물트럭이나 생계를 위해 왕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저 같은 관광객은 별로 다니지 않는 루트이기도 합니다. (그날도 저 혼자였어요... T.T)
그리고... 목도 심하게 마르니까 적당히 알아서 하면 됩니다.
(공중 화장실도 있습니다. 우리돈으로 2~300원 정도 하는 듯!)

국경 마을이기 때문에 케냐 실링과 탄자니아 실링을 모두 쓸 수 있습니다.
케냐 실링이 조금 남아 있다면, 거기서 털고 가기에 딱 좋겠더군요.
몇 백 실링(몇 천원 수준) 정도만 쓰면 물, 음료수, 간식 따위를 사먹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서 식사를 하더군요. 그곳에서 버스에 타는 사람들도 몇 있었고요.
저는 더위에 지쳐서 입맛도 없고, 음식도 그닥 입에 맞아 보이지가 않고,
제대로 다르에스살람에 갈 수나 있을지 걱정도 되고...
그냥 그 마을에서 담배 몇 대 피면서, 꼬마들과 농담 따먹기 좀 하면서 시간을 때웠습니다.


....

사람과 짐이 좀 더 많아진 버스가 다시 달립니다. 아찔아찔하게 달립니다.
그런데... 비포장 도로네요.^^
국경 근처니까 그렇겠지 하면서 달렸는데, 1시간 2시간 3시간...
거의 4시간 가깝게 비포장 도로를 달렸습니다.
오늘 아침까지도 궁뎅이가 얼얼할 정도로 심하게 쿵쾅 거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상태 안좋은 그 버스로 비포장 도로를 있는 힘껏 달렸거든요.
이 놈의 버스는 포장 도로건 비포장 도로건 안전운행 같은거 없습니다.
힘 닷는 데까지 악셀레터 밟으며 달리는 버스...
아마 사고가 난다면 무조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것 같더군요.

휴대폰도 안터집니다.
국경에서도 잘 터지던 휴대폰이 가물가물...
주변을 둘러보니 깊은 아프리카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인만큼 휴대폰이 터지지 않을만도 하더군요.


그렇게 비포장 도로를 한 참 달려서 도착한 곳이 탕가(Tanga)!
탕가는 제법 큰 도시였습니다.
제법 버스 터미널 비슷한 곳에 버스가 들어갔고, 주변에는 간단한 음식점과 매점, 주점, 커피숍 등등등...
이미 날이 많이 어두웠지만, 버스가 들어오니까 주변이 갑자기 북적이기 시작하더군요.

탕가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좀 있었고, 짐도 많이 내렸습니다.
(이 버스는 승객도 나르고 화물도 나르고... ^_^)
그리고, 탕가에서 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원래는 탕가에서 꽤 오랜시간 머물면서 식사도 하고 음료수도 마시는건데
출발이 워낙 늦어지는 바람에 탕가 대신 국경 마을에서 식사를 했던겁니다.
탕가에서는 사람과 짐을 내린 후 곧 출발했습니다.
(말이 '곧'이지... 뒤엉킨 짐들 속에서 탕가에 내리는 짐들만 내리는게 쉬웠겠어요?)

...

짐과 사람이 내리니까 버스가 제법 날렵하게 달리더군요.
탕가에 근접하면서부터 길도 포장도로로 바뀐 터라 좀 살만하더라구요.

그렇게... 탕가를 출발한 것이 밤 10시쯤 되었을겁니다.
그리고, 깜깜한 밤을 뚫고 뚫고 뚫고 달려서 새벽 3시가 조금 넘어서야 다르에스살람 도착!

휴대폰도 잘 안터지고... 또 휴대폰이 터지지 않으니까 밧데리는 빨리 없어지고...
할 수 없이 휴대폰을 끄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켜곤 했는데
그 바람에 제가 머물기로한 다르에스살람 게스트 하우스에는 연락은 잘 안되고 시간은 계속 늦어지니 걱정은 점점 쌓여가고...
저는 저대로 답답하지요... 전화를 한들, 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왔고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호텔을 나선 지 장장 20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원래는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걸릴거라고 했는데, 이렇게 저렇게 일이 꼬이다 보니 2배나 시간이 걸렸네요.

그런데, 제 생각에 8시간~10시간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국경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절차와 대기시간이 있고, 사람들 식사하는 시간도 주어져야 하고,
탕가에서 짐 새로 정리하는 시간, 그리고 아무리 밟아도 속도에 한계가 있는 결코 짧지 않은 비포장 구간...
버스가 달리는 중간중간에 검문소에서 허비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상당히 여러번 검문소를 통과했고, 그 때마다 차장이 내려서 돈을 좀 찔러 주는 것 같더군요.
차장과 경찰의 대화가 길어지게 되면 20분도 걸리고 30분도 걸립니다.
최소한 12시간은 생각해야 할 듯 합니다.

핵심요약 몸바사-다르에스살람 버스 루트


...

몸바사에서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버스 여행!

진짜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 더위, 피곤함, 두려움, 고독감...
자칫 사고라도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무대뽀 운전도 무시할 수 없죠.

몇 명이 팀을 이뤄서, 현지인 가이드겸 기사 대동하고, 4륜 지프 가지고 간다면
케냐와 탄자니아의 대자연을 가슴 깊숙히 빨아드릴 수 있는 훌륭한 여행 코스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내 몸 하나 간수하느라 사진도 몇 장 못찍었다면 말 다했죠... T.T

하루만에 살이 쪽 빠지고 눈이 쑥 들어가는 어드벤쳐를 굳이 몸소 체험하시겠다는 분이 아니라면...

비추!


PS) 지금은... 다르에스살람의 코리아 하우스라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운기조식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