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vs. 북한 - 이기거나 비기거나

2008. 2. 21. 11:15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축구란 경기는 대개가 1점으로 승패가 갈리며, 무승부 또한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력이 좋은 팀이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며
설사 이기더라도 2점차 이상으로 확실하게 이기는 경우가 상당히 드물다.
(물론... 우리는 5대0이라는 스코어에도 아주 익숙하지만 말이다 ^^)

어제 (2월 20일, 수) 있었던 한국과 북한의 경기도 마찬가지.
경기 내용에서는 우리가 북한보다 나은 모습을 보였지만 스코어는 1대1!
어제 경기뿐만 아니라, 월드컵 지역예선이나 조별예선 등에서도
이런 결과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 1대1로 비겼다는 사실만 놓고 대표팀의 총체적 문제를 말하거나
북한팀이 한국과 대등한, 월드컵 예선에서 우리를 위협할 수준의 팀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경기의 양상, 주도권, 압박

확실히 이런 측면에서 한국은 북한보다 우위에 있다.
우리팀의 압박과 치열한 쟁탈전을 견디기 힘든 북한으로서는 뒤로 물러서는
수비와 한 번의 득점 찬스를 노리는 전략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힘과 높이에서도 우리 선수들이 앞서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기는 한국팀의 리드 상황이 대부분 이었다.
북한은... 아쉽게도 스피드와 기동력, 개인기, 투지 등에서는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고
일부 우리보다 나은 부분도 있었지만...
경기력에서는 분명히 한국이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대세

단연 화제의 주인공은 정대세.
수비수가 자기보다 어깨 하나정도 앞서 있는 상황.
일반적으로 이 상황이라면, 다음 스텝에서 수비수가 공을 건드려서 득점 기회가 무산되겠지만
정대세는 수비수보다 약간 처지는 상황에서 먼저 발을 뻗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골키퍼의 위치까지 파악하고 정확한 슈팅으로 득점!
정대세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한국의 아무개보다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K-리그에서 한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 정도를 꽤찰 수 있으면 좋은 정도? (너무 야박한가?)
하지만... 그의 스타일은 독특하다.
힘과 스피드를 위주로 전진하는 스타일의 공격수인데, 요즘 국내 선수들 중에 이런 스타일이 드물다.
요즘 우리나라의 주요 스트라이커들은 힘있고 빠르게 대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페널티 에리어를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공간 만들어가는 스타일이 많다.

정대세 같은 스타일은 현재의 대표팀 수비라인에 좀 부담이 되는 것 같다.
만약 김태영 같이 힘과 스피드가 확실한 선수가 있다면 정대세는 무력화가 되겠지만
현재의 수비라인에는 그런 선수가 없고, 협력 수비로 공간을 위주로 차단할 수 밖에 없을텐데...
이게 잘 맞아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힘 있고 빠른 선수에게 한 방 먹기가 십상이다.
실점 장면에서도... 차라리 좀 더 빠르게, 경고를 먹더라도 최대한 앞쪽에서 반칙으로
끊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기구, 이관우

분투했지만... 안타깝다.
나름대로 제 몫을 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시종일관 빠르고 강하게 진행되는 경기 템포를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더 빨리, 더 강하게 움직이고... 더 빨리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경기 템포를 따라가지 못하면 자기가 가진 능력을 보여줄 기회조차 없으니까...
고기구는 상대 수비를 위협하는 수준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관우는 자기 포지션을 잃어버렸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남일의 공격지원이 이관우보다 더 능숙해 보인것은... 나만 그렇게 본껄까?
(황지수를 수비형 미들로, 김남일을 공격형 미들로 세우는 것보다 못해 보였음)
당장은 미흡하지만, 이관우에게 좀 더 많은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아질 것 같다.
고기구는... 흠... ^^

염기훈, 이근호

염기훈의 발에서 득점이 나온 것은 훌륭한 결과지만...
개인화 활약도에 비해서 팀의 공격리듬을 살리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이것은 이근호도 마찬가지.
득점도 중요하지만 팀이 공격 리듬을 살리고, 공격권을 상대방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쉽고 단순한 플레이를 통해 팀의 공격이 좀 더 완성도 있고, 좀 더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상대팀에게 공을 넘겨주는 장면이 종종 나왔다.
자신있는 돌파도 좋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돌파를 반복하거나
위협적이지 못한 크로스로 상대에게 공격권을 넘겨주는 것은 팀의 공격 리듬을 끊는다.
측면공격수는 팀 공격의 마지막 꼭지점이 아니다.
계속 공격을 살려서 최종 찬스까지 연결해 주는 것이 1차적인 임무!

후반 25분경

우리의 실점이 나온 시간이 대략 이쯤된다.
가장 아쉬운 점은... 이 때가 우리의 추가 득점 기회였다는 것!
북한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공격으로 무게를 옮기는 시점이었고
우리가 다소 밀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시간대였다.
좀 더 능숙하게 승리를 따내는 팀이라면 이런 상황이 오히려 추가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찬스라는 점을
캐치하고, 전 선수들이 잔뜩 웅크린 매처럼 한 번의 완벽한 역습 찬스를 노렸다면 좋았을 것 같다.

2007 시즌, 포항이 플레이오프부터 연승 행진을 벌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포항의 리드 상황에서 상대팀이 모험을 걸어 올 때 그 빈틈을 정확히 찔렀던 것이 주효했다는 점!

...

월드컵 예선에서 다시 만나야하는 두 팀으로서 각자 얻은 것이 있을 것이다.
한국은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고, 북한은 정대세를 필두로 한 공격에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예측이긴 하지만...
북한이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에 강한 위협이 될 수준의 팀은 아닐 것 같다.

정대세를 막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런 선수들이 여러명이면 몰라도, 정대세 한명일 뿐이고...
우리팀의 수비를 흔들만큼의 기량을 지닌 선수도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를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렇지 않나?)

우리팀의 문제점은?

수비가 어떻고 골 결정력이 어떻고는 이야기할 바가 아닌 듯 하다.
(우리에게 웨인루니나 호날두, 아데바요르, 드록바 같은 선수가 있나?)

문제는... 후반 20~25분을 고비로 우리의 압박이 약해진다는 점이 문제인듯 하다.
(중국전, 북한전 모두 후반 초중반에 몰리면서 실점을 했다.)
좀 더 오래 경기 주도권을 끌고가고, 90분을 지속할 수 있는 압박과 집중력이 문제로 보인다.
선제골을 넣은 후, 추가 득점 기회를 놓치고 상대의 위협적인 득점 위협을 견디면서도...
끝내는 1대0 승리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능력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정무 감독의 "체력론"을 비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