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에서 꼭 고쳤으면 하는 것...

2007. 6. 19. 10:40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네이버에서 박문성 해설위원의 칼럼을 보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네요.
("K리그, 90분 그 이상의 감동을 말하라", 칼럼보기)

칼럼의 내용과 제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격축구라든가 스타 프레이어라든가 경기의 재미 어쩌구 하는 것을 모두 떠나서...
K리그에서 부족한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축구 자체가 가지는 에너지와 스토리라는 점에서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박문성 위원은 K리그를 통해서 축적되고 기억되는 스토리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언제나 축구장에 가면, 또는 축구 근처에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스토리, 전설, 추억, 재미 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야 한다는 점이고, 그것은 축구 자체의 경기력과 상관 없이 팬들이 축구장 찾거나 축구를 더 가까이 느끼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말이지요.
이만수 코치의 팬티 세레모니 약속이라든가 우승 당시의 유니폼을 입고 팬들과 함께 전설을 다시 새겨보는 것들을 야구 속에 녹아 있는  감동과 전설을 스토리로 예시하기도 했습니다.

K리그에는 빅 스타가 없다거나, 골이 너무 적다거나, 경기력이 떨어진다거나, 심지어 '쇼' 적인 요소가 없다거나...

저는 축구팬으로서 이와 같은 진단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그런 부분에서 부족한 면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K리그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런 것들이 우리와 똑같이 결여되었으면서도 우리보다 훨씬 신명나게 축구를 하는 나라들도 많습니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K리그에 대한 진단 치고는 너무나 판에 박히고 너무나 표면적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들 보다는...
축구팬의 입장에서는 앞서 소개한 박문성 위원의 지적과 같이 우리 가슴을 뿌듯하게 해 주지 못하는 작은 차이들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옵니다.

축구팬들이 진짜로 축구장에서,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팀에서 얻고 싶은 것은 화려한 쇼나 스트레스 해소가 아닌, 열정 자부심 추억 전설 같은 보다 원초적이고 뭉클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

저는 다른 하나를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K리그에서 축구가 가진 열정과 에너지가 좀 더 표현되었으면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것들은 내가 평소에 유럽 정상급의 리그 경기와 K리그 경기를 비교하면서 느낀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투박하리만치 억세고 무식할만큼 고전적인 축구 정신이 충만한 EPL의 경기들을 보면 많은 차이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지요.

TV를 통해서 K리그 경기를 보면서 여러분도 느끼셨을겁니다. 경기 중에 상대와의 몸싸움이 벌어졌을 때 상대 선수가 '툭' 밀치면 "어~어억!" 하면서 과장된 소리를 지르고 커다란 액션으로 넘어지는 모습...
하지만, 상대의 몸싸움에 밀려서 반칙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한 몸싸움으로 맞받아 치는 것이 축구 본연의 정신이고 그만큼 경기를 더 박진감 넘치게 합니다. 주심의 휘슬을 기대하는 플레이가 너무 많습니다.

태클이 들어올 때 살짝 발을 걸리면서 (또는 발이 걸릴 수 있도록 상대 선수의 태클이 쓸고가는 곳에 다치지 않을 정도로 발을 위치시키면서) 넘어지는 행위.... 하지만, 한발 먼저 공을 이동시키고 태클을 피하거나, 설사 태클에 걸렸다 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일어서서 공을 차지하기 위해 돌진하는 모습이 팬들이 원하는 모습입니다.
우리 K리그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런 플레이를 많이 볼 수 있긴합니다.
하지만, 현재 세계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는 EPL에서는 그런 장면이 훨씬 덜하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구만 보더라도... 그리 강하지 않게 몸에 맞는 공을 맞은 후에 바로 드러누워서 스프레이 뿌리는 선수와 일단 1루로 뛰어간 후에 상태에 따라 치료를 받는 선수 중 누가 더 팬들에게 사랑을 받겠습니까?

반칙에 걸려서 넘어졌을 때... 그라운드에서 한바퀴 두바퀴 구르고, 동료 선수들이 한 숨 돌리면서 충분히 물을 마실 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의료진이 들것을 들고 들어오려는 찰나에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그제서야 본인도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경기를 하는 행위...
하지만, 진정 에너지가 넘치는 선수는 넘어지면서도 공을 주시하고, 최대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쓸뿐만 아니라, 넘어지는 즉시 공을 차지하기 위한 다음 행동을 상대 수비보다 먼저 취하려 합니다.
박지성도 그렇게 하고 웨인 루니도 그렇게 합니다.
넘어지는 상황에서도, 상대의 거친 쇼율더 차징이 들어와도, 그들은 볼과 동료들을 주시하면서 최대한 빨리 다음 동작을 취해서 볼을 차지하려 애쓰는 모습!

어떤 때 보면 K리그의 심판들은 심판이 아니라 '그라운드의 1차 진료자'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좀 비꼬아 말해서... 누군가 넘어지면 휘슬을 분다는 말이지요.
앞에서 예로 든 것처럼, '툭' 밀었을 때 '아~악!'하고 넘어지면 '삑'하고 휘슬을 불어줍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말이지 툭 --> 아~악 --> 삑으로 이어지는 3단계 정규 반칙코스가 상당히 많습니다.
태클과 몸싸움은 그냥 정당한 축구 경기의 일부로 볼 수는 없을까요?
아주 작은 판정 기준의 차이일텐데... K 리그의 경우는 반칙으로 보는 기준이 훨씬 엄격하며, 선수들 또한 그걸 이용해서 경기를 끊어가면서 경기를 할 때가 많습니다.
심판과 선수가 함께 합의하고 노력할 부분이며, 의외로 축구선수들에게 오랜 기간 길들여진 습관이라는 점에서 쉽게 개선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질주 본능, 그 무한하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아닌
기술적인 반칙, 노련한 경기 운영, 상대의 실책 유발, 정면으로 맞받아치기 보다는 교묘한 술책에 의존하는...
경기는 자주 끊어지고, 심판은 이것을 수습하는 데 또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열정이나 도전의 정신, 축구 경기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강한 에너지와 역동성이 심하게 결여된, 축구 본연의 아름다운 매력이 상실된 축구를 보는 셈입니다.

흥행을 말하기 전에, 진정 아름다운 축구의 정신을 K리그가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