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을 보면 자꾸 황선홍 생각이 나...

2007. 6. 12. 19:27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어쩌면 이동국이 이번 아시안컵에서 뛰지 못할 수도 있단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부상 당했던 왼쪽 무릎에 통증이 있었고, 큰 부상은 아니라지만 여전히 통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시안컵 출전이 불투명하다고 했다.

이동국 본인도 굳이 부상의 위험을 안고 무리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핌 베어벡 감독 또한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뛰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백 번 천 번 만번... 옳은 결정이며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

옛날에는 어땠을까?
문득 1998년의 황선홍이 생각난다.
마지막 평가전(vs. 중국)에서 크게 다쳤음에도 그는 결국 대표팀 일원으로 프랑스로 갔다.
어떻게든 뛰어야 했기에 주사를 맞으면서까지 준비를 했지만, 결국은 한 게임도 뛸 수 없었다.

언젠가 황선홍이 말했다.

"그 때 만약 무리해서 주사를 맞고 그러지 않은 채 잘 추스렸으면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는 뛸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래... 그 땐 그랬다.
선수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어떻게는 몸을 추스려야 한 게임이라도 뛰어 주는게 미덕이었으며, 선수 자신 또한 그것을 강한 사명으로 느꼈던 시절이다.
그랬기 때문에 팀의 핵심적인 선수는 비록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표팀에는 일단 합류했으며, 합류한 후에 재활과 훈련을 병행했고, 여의치 않으면 주사를 맞아가면서까지 훈련에 임했고, 설사 대회 초반에는 벤치를 지키더라도 꼭 중요한 경기에서는 붕대를 감은 채 등장해서 기어이 자기 몫은 했어야만 했다.

중계방송 중에도 심심찮게 캐스터와 해설자는... "오늘도 진통제 주사를 맡고 경기에 임하는 투혼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되는데... 하지만, 당시에는 이게 당연한 거였고 심지어는 미덕이고 귀감이었으며, 그 선수의 그런 부상 투혼이 선수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힘이기도 했다.

절대로... 그래선 안되는데 말이다.
만약... 1998년에 황선홍이 과자처럼 부스러지기 직전의 그 무릎으로 단 한 게임만 뛰었어도 2002년에 우리는 첫 경기 결승골을 멋지게 작렬시키던 모습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더 아쉬운 것은... 이미 그 전에 황선홍에게는 그런 류의 일들이 더 있었고
그로 인해서 부상과 재활을 얼마나 많이 반복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동국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밴드가 칭칭 감겨진 다리로 꾸역꾸역 뛰었고, 2006 독일 월드컵 바로 앞에서 끝내 꺾이고 말한다.
부상을 당했던 그 한 경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시는가?
아니지... 이미 그 전에 헤지고 닳고 느슨해진 힘줄이 그 참에 끊어졌던 것이지...
....

지금은... 어느새 선수들의 부상에 대해서 예전보다 훨씬 여유와 합리성을 찾은 시대인 것 같다.

부상중이더라도 일단 대표팀에 뽑히는 것이 아니라, 100%가 아닌 상태에서는 대표팀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
설사 진짜 부상이 아니라 꾀병이라고 하더라도, 꾀병 따위를 부리는 선수를 강제로 소집하기 보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대표팀에 뽑힐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해외 리그에서 뛰는 짱짱한 선수라 할지라도, 소속 팀에서 충분한 출전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그 역시 대표팀에서 뛸 자리는 없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거다.

이동국이 통증 때문에 아시안컵 출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한 그런 일을 놓고 선수의 투혼이니 자세니 국가관이니 하는 투로 매도하는 일도 없는 것 같다.
(포털 사이트의 기사 댓글을 보면... 아직도 있기는 있다만...)

내 바램일 뿐일지는 몰라도... 이동국이 충분히 회복해서 아시안컵에 나설 것이라 생각한다.
부상 자체가 심한 것은 아니고, 아직은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부득이하게 나설 수 없다면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저 빨리 회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한 템포를 쉴지언정...
앞으로 더 오래, 더 많은 경기를, 더 많은 골을, 더 많은 승리와 영광을 가져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