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2007. 6. 5. 15:29사는게 뭐길래/볼거리먹거리놀거리


지인의 추천으로 최근에 읽은 소설입니다.

198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품이며, 한 가족의 100년에 걸친 (사실은 100년이 넘는) 중흥과 몰락, 투쟁, 사랑 등을 통해서 치열했던 라틴아메리카(콜롬비아)의 근대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수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은 읽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이런 소설을 읽게 되면, 항상 작가의 인물 구성과 끈질긴 묘사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결코 '지나가는 사람'이나 '행인', '장삿꾼'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고유한 이름과 배경과 캐릭터를 가지며, 소설 속 주인공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상황 속에서 그들만의 역할을 가집니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모든 일들...
비단 한 가족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자연, 거기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나라와 역사에 이르기까지 한 톨 한 톨의 이야기가 짜임새있게 연결되지요.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 끈질김, 탁월한 이야기 전개 능력에 그저 놀라울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이야기는 한 가족을 주축으로 전개되는 대하소설과 같은데, 그 구성 내용을 보면 현실과 초현실적인 판타지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매우 독특합니다.
작가의 끈질긴 묘사만큼이나 독자에게도 끈질김이 요구되는 것이 이런 소설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_^), 반면에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읽어 나가면 읽어 나갈수록 푹 빠지게 만들기도 하지요.
(띄엄띄엄 쪼금씩 읽기 보다는... 작정하고 앉아서 죽- 읽어내려갈 만큼의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책을 펴시기 바랍니다.)

영희, 철수, 성민... 이런 이름이 아니라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호세 아우렐리아 부엔디아, 아마란타, 우르슬라 같은 낯설고 장황한 이름들은 한 페이지만 넘어가면 바로 헷갈려 버리겠더군요. ^^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가는 그들의 작명방식... 누가 누군지 당췌... ^^
예들 들어, 이몽룡과 성춘향이 결혼을 해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첫째가 '몽룡아'이고 둘째가 '몽아'이며
'몽아'가 다시 말도 안되게...
몽룡의 시종이었던 '방자'가 죽고나자 그의 아내 '향단'이와 결혼을 해서
그 사이에 나은 아이가 '몽아단'이며,
'몽아단'과 동네 주막 여자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니는 '몽룡일아', '몽룡이아', '몽룡삼아'...

돌아버리겠죠? ㅋㅋㅋ

...

수 많은 시간을 우리는 무언가 각자의 기준과 가치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인생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런 목적이나 의식 없이 주변의 환경 속에서 개인의 가치관과는 상관 없이 그냥 흘러가듯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열심히 가열차게 살기도 하고, 그냥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꾸역꾸역 살아가기도 합니다.

본능과 본성, 반면에 그와 대비되는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살짝 넘나들기도 합니다.

때론 저항하고... 때론 그냥 순응하기도 하고...

지극히 현실적인가 하면, 또 어떤이는, 아니면 나 자신도 어떤 때는 아주 초현실적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향해 매진하기도 하고...

때론 좌절, 때론 영광, 때론 기쁨, 때론 슬픔, 때론 아픔.
성취, 성공, 욕망, 사랑, 질투, 용서, 화해, 투쟁, 굴복...

아쉽게도... 그 모든 복잡성의 끝은 영원한 행복이 아니라 영원한 고독이라는 것!
인간에게 있어서, 그리고 사회와 역사에 있어서...
언제나 맨 마지막은 철저하게 죽음과 몰락을 겪게되고,
그제서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중흥을 위한 역사가 반복됩니다.

....

신의 축복을 받은 고대의 땅이지만, 지난 수 세기 동안 침략의 땅이기도 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는 진한 아픔이 베어 있는 것 같습니다.

'100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타이틀이 전하고자하는 것은 잡히지 않지만
모든 도전과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강인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렇지만 결국은 죽음과 몰락으로 마감하는 한 없이 약하고 존재감 없는 '인간'의 이야기와
라틴 아메리카의 아픈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

20년쯤 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차라리... 20년쯤 후에 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인생을 살아본 후에 말입니다. ^^

너무 일찍 읽은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