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강원(0:1)포항-끝내기 알까기 극장골, 그래서 4연패

2021. 10. 1. 15:31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직관), 강원(1:0)포항, 2021.09.29(수), K리그1 Round 30

안될 때는 일이 아주 이상하게 꼬인다. 마치 "기필코 지고야 말겠어!"라고 굳게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결국은 어떻게 해서든 기필코 지고만다.

세상에... 끝내기 알까기로 지다니! 이건 극장골이 아니라 막장골이다. 13년만에 찾은 강릉종합운동장,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아들램과 벌벌 떨면서 본 경기치고는 결과가 너무 허망하다.

 

이날의 입장 관중은 571명.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썰렁하기 그지없는 경기장이었지만 포항쪽 분위기는 긴장감이 넘쳐보였다. 선수들도 이 경기를 잡지 못하면 파이널 라운드에서 B그룹으로, 자칫하면 강등권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필 이렇게 중요한 경기를 내주다니, 그것도 너무나 허무한 방식으로.... 리그 순위와 팀 분위기까지 올 시즌 최악의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골키퍼 이준, 분통이 터질거야....

이 참에 호라도 하나 지을까? '양락' 이준 선생이라고... 아마 그의 축구 커리어에서 이 경기는 끝까지 치욕적인 트라우마로 남을 것같다. 두고두고 아픈 경기가 되겠지!

사실 골키퍼 이준을 탓하기도 미안하다. 알까기 직전까지, 93분 동안은 몇 개의 결정적 선방을 포함해 완벽한 데뷔전이었고 이준의 선방 덕분에 어웨이 경기임에도 막판까지 대등하게 끌고 갈 수 있었다.

이준은 좋게 표현하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스타일의 골키퍼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급하고 모험적인 골키퍼일수도 있다. 골문에서 전진하면서 공을 처리하는 모습, 공격수와 적극적으로 경합하거나 빨리 판단하고 빨리 움직이는 모습이 초반부터 나타났다. 약간 우려되기도 했지만 경기 내내 안정적이었고 결정적 선방도 몇 차례 있었다.

알까기가 나온 순간은 거의 종료 직전. 마지막 한 번의 찬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을 잡은 후 곧바로 공격으로 연결해야하는 타이밍이었다.

아마 이준은 공을 캐치하는 순간 이미 다음 동작과 공격수의 위치, 킥 방향을 머릿속에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과 몸이 서두르는 순간 비에 젖은 공은 손을 빠져나가 버렸다. 신인 골키퍼의 실수로 넘기기에는 팀의 상황, 실점 타이밍 모두 최악. 단 한번의 성급하고 안일한 플레이의 댓가 치고는 너무 무지막지했다.

아프지만 값진 경험으로 삼고 잘 극복하기 바란다. 나머지 93분 동안의 훌륭한 플레이가 진짜 이준의 기량일 것이다. 비록 큰 실수가 있었지만 이준의 기량은 충분히 보여준 경기였다.

 

골키퍼는 99퍼센트가 아닌 100퍼센트여야 한다는 것! 꼭 기억하자! 

 

진짜 문제는 공격, 슛, 득점

경기시작 전 워밍업 타임, 선수들의 슛이 여느 때보다 예리하고 비장하게 느껴졌다. 그냥 나만의 느낌일 수 있겠지만 뭔가 단단히 벼르고 나서는 기운이 느껴졌다고나할까? 아무튼 썰렁한 경기장과 달리 포항쪽 분위기는 텐션이 제대로 오른 것 같았다.

경기초반, 역시나 포항이 경기를 주도하면서 빠르고 강하게 상대를 압박했다. 아쉽게도 좋은 찬스가 여러번 나왔지만 득점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슛을 노렸으면 어땠을까, 제공권 싸움도 괜찮았는데 좀 더 공중볼 찬스를 노렸으면 어땠을까, 좀 더 과감하게 경합을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초반의 기세를 조금만 더 길게 끌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선수들 역시 뭔가 쫒기는 마음인지 다소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뜻하는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금새 분위기가 다운된다. 자신감을 잃어버린 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언제부턴가 실종 되어버린 포항 특유의 잘게 부수는 빠른 패스웍, 신광훈과 강상우가 포지션을 옮긴 후 눈에띄게 무뎌진 윙백의 안정감과 공격지원. 이승모가 열심히 많이 뛰어주고는 있지만 싸워주고 버텨주는 센터 포워드의 부재가 절실하다. 타쉬는 공갈빵이고 크베시치는 앙꼬없는 찐빵이다. 너무나 아껴주는 슛, 그나마 가끔 나오는 슛은 소녀감성 여리여리. 어떻게든 해보려는 모습은 보이면서도 하나씩 박자가 어긋난다.

그래도 공격적인 컬러를 유지하는 점은 고무적이다. 비록 어설픈 실점으로 계속 패하고있지만, 어쨌든 공격으로 밀어부치고 공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근성과 자세는 이어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오른쪽 팔라시오스의 개인돌파는 여전히 위협적이고 임상협과 강상우가 만들어 내는 왼쪽의 2인1조 플레이도 깔끔하게 잘 먹힌다.

다만 필요한 것은 마지막 슛슛슛, 골골골! 슛 능력과 감각이 좋은 임상협, 강상우, 신진호는 좀 더 과감하게 슛을 시도했으면 좋겠다.

 

아깝다, 고영준

간만에 고영준만의 플레이로 수비를 뚫고 들어가 슛까지 이어가는 좋은 장면이 나왔는데 골키퍼에게 막혀버렸다. 경기 시작부터 몸놀림이 가벼워 보였고 예전보다 예리한 모습이었는데 아무런 성과없이 교체아웃 되었다.

시즌초반 참 기대를 많이했다. 작년에 몇 게임 뛰지는 않았지만 매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올해는 더 많은 기회와 활약을 펼칠 것 같았다. 그리고, 시즌 초반까지도 좋았는데... 이후에는 뭔가 비슷한 패턴의 플레이가 반복되고 좀처럼 수비수와의 싸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간만에 통통 튀는 모습, 가벼운 몸놀림을 보였다. 이런 경기에서 공격포인트도 올리고 승리도 챙기면서 치고 올라가야할텐데 좀처럼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 이승모, 이수빈, 고영준... 참 기대가 많이 가는 선수들인데 다들 성장없이 머물러 있는 것같아 안타깝다. (강원전에는 경고누적 퇴장으로 결장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김륜성의 성장이 더 눈에 띈다.)

고영준은 뭐랄까... 적게 뛰면서 포인트를 올리는 유형의 공격수였던 것같다. 프로에서는 더 많은 활동량과 수비력까지 요구되는데, 그 부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듯. 스피드뿐만 아니라 좋은 슛 동작과 득점감각을 가진 선수다. 현재의 한계를 꼭 극복했으면 좋겠다.

....


꼭 잡았어야할, 그리고 잡을 수 있었던 강원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4연패, 경기막판 골키퍼의 어이없는 실수로 실점. 팀 사기가 말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피말리는 동해안 더비 패배 후에 일주일간 포항-강릉-광주로 이어지는 국토대장정 원정길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자신감과 냉정함을 되찾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같다. 광주전에서의 좋은 기억만 생각하자. 올시즌 좋았던 경기, 좋았던 플레이만 생각하자.

주문을 외우자.
우리는, 포항은 광주보다 축구를 잘한다.
광주는 야구나 잘해라....

PS) 그지같은 패배 후에 돌아온 숙소. 진로 이즈벡에 컵라면으로 쓰린 속 달래면서 TV를 켰더니 마침 "골때리는 그녀들"
씨바... 정여진도 저렇게 멋진 골을 넣는데, 아이린도 저렇게 슛을 막는데... 우린 대체 뭘 한거냐... 전부 대가리 박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