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0. 16:26ㆍ색다른 축구 직관 여행/클럽월드컵 - 2016 일본
2016-12-23
말이 좋아 클럽 ‘월드컵’이지 사실상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 초청경기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상당부분 유효함^^) 그리고, 남미 챔피언과 유럽 챔피언이 맞붙던 ‘토요타컵’ 시절에 비해 참가국은 늘었지만 경기력 차이 때문에 그닥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딱 한 번! 클럽 월드컵을 몹시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으니….
2009년 포항 스틸러스가 아시아 챔피언 먹었을 때! 당시 포항 스틸러스는 클럽 월드컵 3위를 차지하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내던 때였습니다. 아랍에미리트가 좀 멀긴 하지만…. 그 이후로 아시아 챔피언 먹는게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네요. 그 때 무슨 수를 내서라도 갔어야 했는데… 갔어야 했는데…
그런데, 이번에 2016 FIFA 클럽 월드컵을 보게 될 줄이야!! ㅎㅎ
늘 그렇듯이 계기는 언제나 단순합니다. 함께 축구 보러 다니기 좋아하는 지인에게서 어느날 문득 날아온 짧은 메시지 하나!
“요코하마 같이 가시죠?”
그리고, 얼마후… “4등석 4장 샀어요” (자기꺼 & 우리가족 3인 ==>지 맘대로 합 4장)
머 그렇게해서 느닷없이 가게 됐습니다. 마침 가까운 곳 일본에서 열리는 경기, 포항은 아니지만 K리그 클럽 누군가는 나갈 것 같은 근거 없는 기대, 한 번은 꼭 직접 보고 싶었던 레알 마드리드, 2009년 포항이 나갔던 대회의 분위기가 어땠을까하는 궁금함.
그리고… 연말에 연차 며칠 정도 쓴다고 뭐라 그러지는 않을 것같은 회사의 관대함(?)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설마... 자르기야 하겠어? ^_^)
독특한 토너먼트 방식
클럽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 아닌, 각 대륙별 챔피언 클럽(리그 우승팀)들이 참가하는 대회입니다. 짐작이 가시겠지만 각 대륙별 축구 실력차이가 상당히 크죠^^ (유럽 >>.... 아시아.... >> 오세아니아)
그래서, 클럽 월드컵은 약간 색다른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총 참가국은 각 대륙 챔피언 6팀과 개최국의 리그 챔피언 1팀. 합쳐서 7팀!
개최국 리그 우승팀과 최약체 대륙팀인 오세아니아 챔피언팀은 플레이프를 치릅니다. 여기서 이긴 팀이 6강 진출! 지는 팀은 7위 확정!
6강 중에서 살짝(상당히?) 수준이 남다른 유럽 챔피언과 남미 챔피언은 준결승전에 바로 진출하고, 나머지 4팀(아시아, 아프리카, 북중미, 플레오프승자)이 준준결승을 치릅니다. 준준결승 패자들끼리 무관심 속의 5.6위 결정전. 준결승 진출 팀들은 이기면 결승, 지면 3.4위전. (참고:FIFA 클럽 월드컵 2016)
전북이 이겼더라면 전북:레알마드리드 경기가 성립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티켓 한 장으로 두 경기를
클럽 월드컵의 3.4위 전과 결승전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열립니다. 티켓에 나와 있는 것처럼 3.4위전은 오후 4:00, 결승전은 오후 7:30 킥오프! 경기 시작 한시간 전에 입장, 게다가 이번 결승전은 연장까지 가는 바람에 7시간 넘게 경기장에 있었네요. 경기장에서 맥주 마시고, 저녁 먹고, 맥주 마시고...
4등석, 골대 뒤에서 또 뒤에 있는 자리 하나에 1만엔(대략 10만원)이면 싼 티켓은 아니지만 1+1으로 두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죠. ^_^
다행히 3.4위전과 결승전 경기가 워낙 재미있어서 1만엔짜리 티켓은 본전을 뽑고도 남았습니다.
특히, 아틀레티코 나씨오날! 우리가 그나마 이름이라도 아는 보까 후니오르스나 팔메이라스는 어디가고 왠 듣보잡 콜롬비아 클럽이 남미 챔피언을 먹을건 뭐람…. 씨불씨불하면서 경기를 봤는데, 챔피언이 되는 팀은 다 이유가 있는 법! 남미 선수들 특유의 매끈한 볼 터치와 개인기 위에 스피드와 패스웍이 더해진 멋진 축구를 구사합니다!
도대체 저런 팀이 왜 가시마에게 져가지고…. ^^ (분명히 시차 적응도 덜 되고 컨디션 꽝인 상태에서 엉겁결에 깨졌을꺼야…. 서포터들도 당연히 결승전 올라갈거라 생각해서 준결승때는 별로 안왔을거야… 라고 생각했음. ㅎㅎ)
나씨오날에 비해 상대팀 아메리카는… 그냥 골 넣을 때 골만 잘 넣었던것 같습니다. ^_^
동점 상황에서 후반 약 10분 가량 남은 시간대에는 양팀 모두 승부를 보자고 덤비는 모습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두 경기를 연속으로 치르기 때문에 3.4위전은 동점일 경우 연장 없이 바로 승부차기로 넘어간다는 것! 뭐, 나름 깔끔한거 같기도 합니다.
3.4위전 끝나고 중간에 경기장에서 이것 저것 먹으면서 시간을 때웁니다. 야끼소바, 오뎅, 치킨 카라아게, 핫도그…. 죄다 줄을 길게 서 있기에 가장 줄 짧은 곳을 보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끈한 전골(?) 같은 것을 팔더라구요.
날씨도 쌀쌀하고 줄도 짧고 뜨끈한 국물 생각나서 일단 샀는데…. 곱창전골 비슷한건데… 저는 맛있게 먹었는데 마눌님께서는 냄새 킁킁 하더니 고개 절레절레..^^
경기장 음식이 다 그렇죠. 맛에 비해 가격만 비싸고 줄서서 기다리다 허기지고. ㅎㅎ
3.4위전 끝나니 해는 뉘였뉘였…. 시간은 한 시간이나 남았고…. 에라 모르겠다… 대층 흡연구역 감으로 때려잡고 담배도 한 대 피고^^ (담배 끊었는데… 잠시 이어 붙였음^^)
멕시코, 엘 산토의 후예들?
엘 산토(El Santo)… 멕시코의 국민적 스포츠 영웅이자 전설 그 이상의 전설로 추앙받는 프로 레슬러입니다. 멋진 마스크를 하고 화려한 묘기로 악당을 응징하는 모습!
머… 우리에게 마스크는 정의의 사도 보다는 악당 이미지가 더 강하긴 하죠… 어린 시절 김일과 프로 레슬링에 열괄했던 제 또래의 스포츠 광팬들…. 일본의 유명 레슬러 ‘타이거 마스크’ 다들 기억하시죠? 우리에게는 악당으로 남아있는… ㅎㅎ
복면 마스크는 멕시고 스포츠팬의 상징이라고 할까요? 마침 제 좌석이 아메리카 서포터들 바로 뒤였는데 마스크 뒤집어 쓴 아저씨들이 제법 보입니다. 쫌 있어 보이고 쎄 보이더라구요. 낼 모레면 제 나이도 쉰인데… 이런 장면 볼 때면 바로 헤벌레…. 저거 나두 함 해보고 시푸다…ㅎㅎ^^
이제 결승전! 경기가 바뀐다, 관중석도 바뀐다!
3.4위전이 끝날 때까지…. 도대체 그 유명한 가시마의 서포터들은 어딨는거지? 포항이 결승 올라왔다면 한국에서도 몇백명은 비행기 타고 왔을텐데 경기장에서는 도대체 가시마 앤들러스의 유니폼을 볼 수가 없는데…
3.4위전이 끝나니까 관중석에도 살짝 변화가 생기더군요. 저는 레알 마드리드쪽 관중석에 앉았는데 맞은편에 설치됐던 나씨오날의 걸개들이 철거되고, 하나씩 가시마의 걸개로 바뀌더라구요. 그리고, 그제야 가시마 서포터들의 붉은 레플리카가 관중석 한 블록을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제 주변의 관중석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레플리카가 점점 등장!
그리고, 응원의 주체도 바뀌어서 가시마와 레알의 응원 소리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에 관중들도 2만명 이상 추가 입장! (결승전 관중 약 6만 여명. 경기장 수용은 7만명 규모.)
아마 3.4위전은 나씨오날과 아메리카 팬들이 주도하도록, 그리고 결승전은 가시마와 마드리드 팬들이 주도하기로 사전에 조율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 또한 한 경기장에서 연달아 두 경기를 보는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맞은편 골대의 가시마 서포터 존은 이미 빽빽한 깃발과 함성!! 원정온 마드리드 팬들도 샤우팅!!!
Spirit of Zico
지코의 후예를 자청하는 가시마 앤틀러스! 브라질 출신의 전설적 공격수이면서 J리그 초창기에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었죠. 가시마 팬들이 엄청 사랑한다고 하더니… 가시마 홈 경기장에 지코의 동상도 있다고 하더니… 이미 많은 시간(20년쯤?)이 흘렀음에도 경기 시작에 앞서 대형 지코 걸개를 펼칠 정도로 지코에 대한 존경을 가지는줄은 몰랐습니다.
쌈박질 한 번 안하나?
이러면 안되지만… 축구장에서 쌈 구경 하는거도 재미중에 하나긴 합니다. (단, 나만 끼지 않는다면 ^_^)
살짝 그런 기미가 보이긴 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가 거의 확정되어 갈 때, 마드리드 서포터들이 관중석에서 걸개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하필 마드리드 서포터들 속에… 그 걸개 펼쳐지던 곳에 앉아 있던 (아마도) 일본 팬, 경기 내내 자꾸 시야를 가리고 걸리적 거려서 뿔이 났던 모양입니다. 걸래를 펼치지 못하게 끝까지 대들면서 걸개를 잡아 내리고 밀어내고 하더니 급기야 서로 쌈박질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싸움은 안하고 안전 요원의 지도하에 평화롭게 마무리 돼서 조금 김 샜습니다. ㅎㅎ
우르르 몰려서 싸우기 직전까지 갔다가 살짝 물리적 접촉이 생길려는 찰나에 양측이 긴장감 있게 갈라서는… 딱 그 정도까지! 항상 축구장 관중석 다툼의 99%는 요정도 긴장감 속에서 안전하게 마무리되더라구요^^
누가 뭐래도 레알 마드리드
3.4위전도 좋고 결승전도 좋고 가시마 앤틀러스의 선전도 빛났지만… 어쨌든 관심사는 레알 마드리드, 그 중에서도 주인공은 호날두!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스코어는 2대2에서 연장까지 치렀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그 휘황찬란한 플레이는 경기 내내 압도적이었습니다. 개인기술, 스피드, 힘, 체력… 모든 것이 세계 최정상급인 선수들의 플레이가 쉴틈없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1대2로 리드를 빼앗긴 후에 마르첼로가 위로 바싹 올라가면서 호날두, 벤제마와 끊임없이 상대를 괴롭히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경기 초반에 화려한 개인기로 가시마 선수들 앞에서 우쭐하던 호날두… 1대2로 리드를 뺏기자 완전 빡친 표정으로 플레이 하더니 PK 동점골 넣고도 셀레브레이션 없이 바로 공 회수!! 단단히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ㅎㅎ
연장전 들어가서 재역전 골 넣더니… 그제서야 신나게 “호~~우!” 역시 호날두는 호날두! 해트트릭과 함께 오늘 일당 채우고 교체 아웃!!
물론 가시마의 선전도 놀라웠습니다. 가시마 앤틀러스의 공격 타임에는 엔도와 시바사키가 주로 보였는데, 비록 찬스는 적었지만 슈팅 찬스에서의 집중력이나 슈팅이 좋았습니다. 시종일관 몰아붙이는 상대에 맞서서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맞서 싸우면서, 가끔씩 찾아오는 작은 기회를 잘 살렸습니다.(…만 연장전에서는 역시나 역부족…ㅠ.ㅠ)
그냥 부럽죠 머… 가시마 앤틀러스가 아니라 포항 스틸러스가 저렇게 뛸 수도 있었을텐데, 포항이 아니라도 전북이나 서울이 저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할 수도 있었을텐데…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고, ‘클럽 월드컵’이라는 타이틀을 놓고 6만 관중 앞에서 후회없이 정면 승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선수들이나 구단에게는 일생에 한 번 오기도 힘든 기회니까요.
호날두의 기량과 스타성을 한 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왜 레알 마드리드가 최고인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저 멀리 검은 수트를 입은 민머리 아저씨는 그 유명한 지네딘 지단입니다. 공보다 빠른 선수는 없다는 축구 명언이 있지만, 지단 같은 선수들은 그 빠른 공을 다 살려내고 안전하게 소유하고 더 좋은 찬스를 만들어서 동료에게 건네줍니다. 호날두의 득점 후 특유의 ‘호우~’ 세레모니를 할 때는 전 관중이 함께 ‘호우~’를 외칩니다. 이 모든 것들…. 우리 K리그 클럽에서는 느낄 수도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죠. 비디오 화면으로도 못 가르치죠.
우리 K리그 클럽들도 가능한한 많이 이런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관전했으면 좋겠습니다. 구단 프런트는 물론이고, 특히 어린 선수들에는 꼭 관전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일생에 한 번이라도 저런 상대와 후회없이 싸우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7 시즌 포항에 입단하는 신인 선수들이 이런 경기를 봤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머플러 장사꾼들 폭망했습니다….
클럽 월드컵은 사실상 유럽 챔피언과 남미 챔피언간의 대결이나 마찬가지고 나머지 팀들은 들러리... 설마 가시마 앤틀러스가 결승전에 올라 올 줄 알았을까요? 결승전은 당연힌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나씨오날, 유럽과 남미의 대결이 될 줄 알았겠죠… 그래서, 결승전 매치 머플러도 레알 마드리드 vs.아틀레티코 나씨오날…
경기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센엔, 센엔’을 외치는 머플러 아저씨들과 수북히 쌓여있던 폭망 머플러들… 이건 모두 너무너무 선전한 가시마 앤틀러스 책임입니다^^ ㅎㅎ
뭐, 우리야 구경꾼이니까 이것도 마냥 재밌네요. 우리 일행, 폭망 머플러 아이템 센엔(만원)에 득템했습니다!!
(사진은 클럽 월드컵 보러가자고 저희 가족 티켓까지 훅 질러버린 이창희님^^ 이창희님이 쓴 관전 후기는 요기 클릭)
다음에는… 포항아! 너도 함께 가자!
세상 모든 축구는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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