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까의 상징, 봄보네라 그리고 까미니또

2014. 6. 13. 08:32월드컵 여행 - 2014 브라질/2.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보까(La Boca)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보까 주니어스(후니오르스)라는 유명한 축구팀이 있는 곳, 마라도나가 자란 곳,  가난한 부두 노동자들의 마을, 탱고가 태어난 곳,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우범지역,  까미니또( Caminito) 라는 예쁘게 색칠된 판자집들이 모여있는 거리...
가난한사람들의 동네, 가난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축구는 가난한 사람들의 운동으로 자리를 잡았죠. 쉽게 접할 수 있고, 학교 보다는 공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이 많고, 공 하나만 있으면 열명이든 스무명이든 함께 즐길 수 있고,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배우지도 못했고 인물도 안될지언정 공 잘차는 재주 하나로 영웅이 되고 전설이 되고 돈도 벌 수 있는 인생의 탈출구이기도 하지요.

보까는 그 모든걸 설명하는 대표적인 지역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난과 축구와 열정과 영웅이 함께 공존하는 곳!
거기에 있는 또 하나의 축구 성지, 파란색과 노란색이 지배하는 세상, 봄보네라( La Bombonera)!!
여기 안갈수는 없죠.  비록 아르헨티나 팀이 경기를 하는 시간에 탱고나 배우러 갔을지언정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와서 보까와 봄보네라를 안보고 간다는건 말이 안되죠^^


봄보네라가 특별한 것은 경기장이 아름답다거나 훌륭한게 아닙니다. 봄보네라가 가진 상징성과 스토리가 사람들을 그리로 가게 만드는 것이겠죠. 실제로 가 보면 깔끔하게 잘 꾸며진 보까 주니어스 박물관에 비해서 축구장은 상당히 낙후된(?)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랑은 좀 반대죠? 경기장은 삐까번쩍,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없거나 방치된 전시장, 함께 공유할 스토리는 축구 경기가 아닌 아이돌의 콘서트  ㅠ.ㅠ
우리 축구도 앞으로 더 많은 전설로 가득찬, 시설 보다는 환희와 눈물과 열정의 스토리가 더 중요한 날이 오겠지요!





봄보네라에 간 축구팬이라면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꼭 해보고 싶은 유치한 짓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경기장에 갈 때에는 마흔 여럿이란 나이에 그 짓을 하려니 좀 창피할 것 같아서 생각을 접었었는데, 막상 경기장에 들어가니까 그런거 싹 없어지더라구요. 바라보는 시선이 꽤 많음에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가방 팽개치고 점퍼 벗어 던지고 바로 인증샷 찍기!
이러는거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지만, 축구팀 서포터들이 가장 멋진 골이 터지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용수철처럼 몸이 먼저 튀어나가는 느낌으로... 잠시 보까의 서포터가 된 마음으로... ㅎㅎ

솔직히... 다른거 전혀 관심 없었구요...
이 짓 할려구 봄보네라 간거에요^^





인증샷 찍고 노느라 박물관은 대충 둘러봤습니다. 우승 많이 한 팀이죠. 스타와 전설 많이 배츌한 팀이죠. 유니폼 멋있고 여러번 바뀌었죠. 보까가 세계적인 명문팀이란거 잘 알죠. 기타등등... 검색하면 다 나오죠^^ 보까의 풀 스토리 줄줄 꿰는 사람 주변에 많습니다. 그러나, 봄보네라의 철망에 매달려 본 사람은 몇명 안되죠^^ 그걸로 된겁니다!!!



봄보네라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나오는 곳이 까미니또. 경기장 둘러본 후에 자여스럽게 발길이 옮겨지는 곳입니다. 흉물스런 판자때기 집에 배에서 쓰고 남은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답니다. 쓰고 남은 페인트인지라 색깔도 제각각, 헐렁한 판잣집일지언정 예쁘게 가꾸고픈 마음이 모여서 알록달록한 동네가 만들어졌답니다.






날씨가 맑았으면 알록달록한 까미니또가 더 예쁘게 보였을테고 더 많은 것을 즐길 수 있었을텐데 그게 좀 아쉽네요.
봄보네라와 까미니또.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오랜시간 집단 창작을 통해 이루어낸 원시적인 아룸다움을 간직한 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은근과 끈기로 투쟁하지 않고, 그렇지만 절망하지도 않고.. 가난하고 투박하지만 낙천적이고 낭만 가득한 사람들이 만든 역사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