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기술위원회부터 정상화합시다!

2011. 12. 9. 17:07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선임하거나 해임하는 일은 명예롭고 권위가 있어야합니다.
이번 조광래 감독의 해임 과정은 너무나도 졸속적이고 품위와 상식이 없는 처리과정이네요.

먼저, 해임의 이유는?
성적이나 졸전, 패배를 이유로 감독을 자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의 성적이 과연 해임에 이를 만큼의 성적이었냐는 점은 의문입니다.
이런 기준이라면 전승 내지 무패의 감독많이 살아 남을 수 있겠죠.

뭐... 아예 기준을 그렇게 잡던가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아시아 팀을 상대로 2패를 하면 바로 짤린다!
한일전에서 지면 그 즉시 짤린다!
월드컵 3차 예선을 조기에 확정짓지 못하면 바로 짤린다!
하지만, 이런 기준을 잡을 수는 없겠지요.

저는 조광래 감독을 선임하던 첫 단추로 시간을 되돌려서 묻고 싶습니다.
기술위원회에서 조광래 감독을 선임할 당시, 그의 축구철학과 스타일을 알았던 것 아닌지요?
그리고, 그런 조광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것이 아닌지요?
조광래 감독은 자기만의 전술과 색깔이 뚜렷하고, 유치원생 발굴과 조련에 남다른 실적이 있었고,
꼬꼬마 땅볼 축구를 구사할 것이고, 그 길을 끝까지 갈 것이라는 것을 각오하지 않았는지요?
조광래 감독이 그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살펴야하고
만약 제대로 가지 않는다면 기술위원회는 조정 능력을 발휘해야하겠지요.
그리고, 만약 끝내 초기에 선임했던 목적에 미치지 못한다면 경질을 결정하겠지요.

이번 감독경질 과정은 그러한 질서에서 벗어나도 한 참 벗어났습니다.
과연... 맨 처음 조광래 감독을 선임할 때,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대표팀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실현시켜줄 적임자를 택한 것이 아니라
국가대표팀의 발전 목표 없이, 그냥 '대표팀 적임자'를 물색했기 때문에
명확한 기술적 지원이나 평가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해임의 근거도 절차도 방법도 졸속적인 것이지요.
명확한 초심과 목표가 없으니 뒷끝도 흐리멍텅할 수 밖에!

기술위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기술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지, 기술위원회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감독경질 결정 또한 정상적으로 기술위원회의 결정이아닌 '윗선'의 결정이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지요.
한 마디로, 협회 고위층이 욕먹어 싸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통해서 볼 때,
황보관 기술위원장의 잘못은 이러한 윗선의 결정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겠지요.

정상적인, 그리고 건강한 축구협회라면
기술위원회는 대표팀 전력 강화의 핵심적인 수행조직으로 역할을 해야합니다.
대표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경기력 향상을 위한 계획을 잡고,
그 계획을 실현시킬 최적의 감독을 선임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지요.

2002년의 성공은 기술위원회의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당시, 이용수 기술위원장을 중심으로 기술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이용수 위원장은 월드컵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단기간에 거두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거물급 족집게 강사가 필요하며, 에메자케나 히딩크 급의 감독은 돼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기술위원회의 결정 내용에 따라 축구협회는 후보자들과 협상에 들어갔고, 최종적으로 히딩크가 선임되었죠.
당시, 이용수 위원장은 흔들리고 질타를 받는 히딩크호를 맨 앞에서 변호했으며, "만약 당신이 잘리게 된다면, 그 전에 내가 먼저 잘린다!"라면서 한 배를 타고 항해했습니다.

기술위원회의 역할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 축구의 기술 로드맵을 관리하고, 각급 대표팀을 모니터링하고, 타 팀의 전력과 기술의 동향을 분석하고, 각급 대표팀의 감독을 선임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들이 그 임무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술위원회가 정상 가동되지 못하는 상황...
하물며, 국가대표팀 감독의 해임 과정에서 윗선의 메신저 역할밖에 못했다는 점은
지금의 축구협회가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대표팀의 성적이나 전력 저하는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한 팀의 문제, 지금 이 시점의 일시적인 문제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기능을 상실한 기술위원회는 한국축구 전체, 그리고 모든 대표팀에 악영향을 미치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을 축구협회는 인식해야합니다.
축구협회의 그러한 인식이 부족하다면, 축구계의 사람들이 나서서 각성시켜야하구요.

차기 감독? 그 보다 먼저 기술위원회!
지금 당장 급하다고 서둘러 차기 감독부터 선임하는 것이 올바를까요?
그 전에 기술위원회부터 정상화를 해야 하는 것 아닌지요!
협회의 고위층은... 확실한 역할을 하는 기술위원회를 원하지 않는건가요?
하긴... 제 목소리 내는 기술위원회가 있었다면 이번과 같은 졸속적인 결정은 없었을테고
윗선의 말이 그대로 결정사항으로 내려오는 일도 없었겠지요.
진정 그들은 정상적이고 힘있는 기술위원회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위원회는 어떻게든 정상화가 되어야합니다.
황보관위원장은 차기 감독을 물색할 것이 아니라 기술위원회부터 제대로 꾸려야합니다.
주변의 축구인들 또한 그러한 기술위원회가 만들어 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하구요.
누구를 잘라라, 누구를 뽑아라... 라는 문제로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라
'기술위원회'라는 한 곳을 향해서, 지금 당장 힘을 모으는 것이 가장 빠른 문제해결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차기 감독을 선임한다는 말은
조광래 감독을 해임했던 그 사람들이, 그와 같은 절차를 통해서 차기 감독을 뽑는다는 말이지요.
조광래 감독이 비상식적으로 해임된 것처럼, 비상식적으로 차기 감독이 선임되는 모습이 다시 나타나겠지요.

황보관 위원장이 힘을 내던가
황보관 위원장에게 힘을 주던가
힘 있는 다른 사람을 황보관 대신 세우던가
황보관 위원장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구조와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던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같은 과정은 또 반복될 것입니다.

황보관 위원장... 지금 차기 감독을 물색하고 있나요?
아니면, 이 물색된 후보군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나요?

'나는 메신저일 뿐이다'
'나는 이 상황을 극복할 힘이 없다'
그러면, 기술위원장 딱지를 딱 접어 주세요.

'나에게 힘을 준다면 헤쳐 나가 보리다'
'형님들, 선후배님들 도와 주세요'
그렇다면 모든 축구인들, 함께 힘을 모아주세요.
기술위원장으로서 축구계와 주변의 전문가들에게 얼른 달려가세요.

'내가 함 맞서서 해결해 보겠소'
'나를 함 믿어 주시오'
그렇다면, 축구협회의 고위층과 당당히 맞서서 진짜 기술위원회를 얼른 구성하세요.

지금은...
기술위원장의 무거운 책임으로, 기술위원회부터 먼저 챙겨야지요.
기술위원장은, 대표팀 선임의 책임에 앞서서 기술위원회에 자체에 대한 책임이 먼저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킥오프를 할 한 사람...
조중연 회장이나 조광래 감독이 아닌, 바로 황보관 기술위원장입니다.
아우성치며 우왕좌왕하지 말고, 이 사람 저 사람 나와서 기자회견하지 말고,
키를 쥔 한 사람이 바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빠를 듯 하네요.

차기 감독 선임하는게 급선무인데, 언제 기술위원회 정상화해서, 언제 회의하고, 언제 후보 감독 선정하고, 언제 계약하냐구요?
그럼... 그걸 아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나?
빡세게 날밤까면서 달려도 시원찮을 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