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2. 13:22ㆍ사는게 뭐길래/난 그냥... 남자!
어릴 때... 12년을 춘천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20대가 시작되는 시기에 고향같은 춘천을 떠나서 멀리 포항으로 가게 되었지요.
당시 춘천-포항을 바로 연결하는 교통편이 없어서 서울을 거쳐서 포항에 가곤 했지요.
춘천에서 아침 일찍 기차나 버스를 타고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포항행 고속버스로...
대강 8시간~10시간은 걸리는 길이었지만 경춘선 열차나 서울가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정말 근사했습니다.
특히, 아침 일찍 출발한 기차가 경강역을 지나 가평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널 때면
곱게 피어 오르는 물안개, 살짝 얼음이 잡힌 강가나 호숫가에 쌓인 흰 눈은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그쯤 되면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아침잠이 몰려오지요. ^^
춘천을 떠날 때의 아련한 운치도 좋았고, 또 춘천에 가는 길도 참 좋았지요...
포항에서부터 긴 시간을 버스에 시달렸지만...
기차로 만나는 북한강의 모습만 봐도 금새 춘천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고속도로가 뚫렸습니다.
춘천까지 채 1시간도 안걸리게 되었지만
45번 국도와 46번 국도를 달리면서 보았던 아름다운 강과 호수 대신 가드 레일과 터널과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들만 보이더군요.
복선 전철도 뚫렸습니다.
예전에 무궁화호로 1시간 반, 통일호로 2시간 걸리던 길을 이제 1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되었지요.
시간은 30분이 단축 되었고 운행 횟수는 훨씬 많아졌습니다.
더 쉽고 더 빨리 춘천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고 빠르게 갈 수 있게 되면서 춘천의 소중함과 아련함은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30분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을 더 자주 싫어나르는 댓가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춘천'이라는 이미지를 빼앗겨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춘천은 가는 맛이라는데...
그렇게 경춘선이 있었기 때문에 춘천에 가는 맛이 쏠쏠했는데...
그 맛이 예전만 못해진 것 같습니다.
천천히, 조금 더 어렵게, 그리고 자주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에 아련하고 소중했던 것 같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흠뻑 젖어 있던 스폰지....
추억은 꽉 짜버리고 스폰지만 남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름은 여전히 포항 스틸러스인데... 미식축구팀이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사는게 뭐길래 > 난 그냥...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7) | 2011.09.06 |
---|---|
아들녀석의 작품... (첫 블로그 포스팅?) (0) | 2011.06.05 |
사진 찍어주는 아들놈 (3) | 2009.09.07 |
국민들은 주주총회를 원하는게지... (0) | 2009.06.12 |
민주주의의 원칙? (0) | 2009.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