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민음사
(원제 : Cronica De Una Muerte Anunciada)

배우 최진실의 자살은 참으로 안타깝네요. 한편 허무하기도 하구요. 68년생으로 알고 있는데... 저보다 한 살이 위니까 같은 시기에 같은 문화 속에서 살았고, 젊은 시절 이를 악물고 TV를 보던 시기에는 가장 사랑스러운 요정이었습니다.

그 시절... 최진실, 이미연, 김완선 등의 인기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저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기숙사 휴게실에서 누군가가 TV 가요 프로그램을 보다가, "xx야, 김완선 나와!"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방 저 방의 눈이 탕탕탕 열리면서 몇몇이 우르르 뛰어나와 휴게실에 모일 정도였지요^^

다들 저와 비슷한 나이지만, 다른 직업 다른 세계에 살기 때문에 살아가는 방식도 틀리고... 저는 평범하게 그 시절에 사귀던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이 하나 생기고, 그 시절에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과 같은 회사에 다니고, 또한 그 시절에 만났던 축구장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지났지만 그 시절의 것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화려함 속에 살고, 많은 돈을 벌고,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타들이지만... 저처럼 평범하게 굴러가고, 조금씩 조금씩 진화하고, 그렇지만 무엇인가 계속해서 끈을 이어가는 인생은 아닌 듯 합니다.

결혼을 한 후에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고, 천국에 사는 요정같은 톱 스타였다가 아주 평범한 연예인이 되기도 하고, 벼락같은 성공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너무나도 굴곡이 심한... 변화무쌍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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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중에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라는 소설이 문득 생각나네요.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잘 알려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지요.)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실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마르케스가 '기자'의 입장에서 정리한 소설입니다.
이것은 취재 내용이기도 하고, 반면에 뛰어난 작가의 언어가 빛나는 소설이기도 하지요.

한 청년이 죽었습니다.
매우 잔인하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수 없이 많은 칼질을 당했습니다.

누구도 말리지 않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을 죽인 사람들은 비록 살인죄를 지었음에도 도덕적으로는 면죄부까지 받았습니다.
여동생을 범했고, (정확히는... 여동생을 범했다고 알려진...사실 진짜로 범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로 인해서 대단한 부잣집에 명성이 자자한 멋진 청년과의 축제의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파혼이 되고,
오빠들은 여동생을 불행하게 만든 그 청년을 향해 복수의 칼을 들었습니다.
순결과 명예를 짓밟은 사람에 대한 공개적인 복수였던 셈이고
그랬기 때문에 도덕적인 면죄부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 사건이 있기 전에...
살해를 당한 청년을 제외한, 그 마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예고된 살인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여자의 오빠들은 내일 아침까지 복수를 할 것이라고 떠벌였으며
그것은 소문이 되어 발빠르게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더욱이... 여동생을 위해 복수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그들이었지만,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의 예고된 살인을
말려주었으면 하는 의사도 표현하였지요.

하지만... 모두가 아는 이 예고된 살인을...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왜 죽이려는지를 알면서도...

누구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곧 죽게될 그 청년에게 몸을 피하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소극적으로 그 청년에게 사실을 전하려 한 사람은 있었지만 ...)

그렇게... 예고된 살인이 벌어지게 되었고
명예와 복수라는 명분으로 (아무런 사실 확인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종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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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의 자살, 그에 앞서 안재환의 자살...
그 외 우리 주변에서 간혹 듣게 되는 자살의 이야기들...
어느날 아침에 뚝딱 하는 충동에 의한 자살은 아닐겁니다.
(비록 순간적인 충동이 있었다 해도, 그에 앞서서 수 많은 예고와 전주가 있었을 테고, 주변의 사람들은 그 예고된 자살의 기미를 알았을 것입니다.)

비단 자살이나 살인 같은 무거운 일들만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 떠나려 한다고 합시다.
휙 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힘들다는 말을 했을 것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에 남기가 어렵다는 말을 술 자리의 동료들에게도 했을겁니다.
동료들의 위로를 통해 한 번 두번의 고비를 넘기게 되었겠지요.

하지만... 누군가가, 그 문제를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서서 그 사람의 고민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결국은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날 아침 그 사람은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미 예고되었던 일이... "결국은..." 벌어지게 되는겁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모두가 걱정하는 사건이... "결국은"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결국은" 벌어지는 일들의 대부분은 "이미 예고된" 사건들이 아니었는지요?

혹시 "이미 예고된" 어떤 사건을 알고 있다면...

쉬-쉬-하지 말자구요.
뒤에서 수근수근하면서 암암리에 소문만 퍼지게 놔두지 말자구요.
알릴 것은 빨리 알리고, 말릴 것은 말리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얼른 해결해 주자구요.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예고된 사건을 놓고 조마조마해 하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발벗고 나서서 직접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냥 방치할 것이 아니라면... 빨리 나서서 그 예고된 사건을 막아야합니다.

그 당사자 역시... 그런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동생의 복수를 행한 그 청년들이, 속으로는 누군가 나서서 자기들의 행동을 막아 주기를 바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이미 예고된 사건들을 그냥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기만 했던 일들이 너무너무 많은 것 같네요.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막지 못한, 아니 막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걸 알면서도 그냥 그대로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고... 또 안타까워하고...

인간이 위대하다지만... 저를 비롯한 대다수는 무력한 방관자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