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팀이 무너지다!

2007. 7. 16. 21:00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전략, 전술, 운빨, 경기외적인 상황 등등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무너진 것 같다.

팀이 무너졌다...
다시 말해서, 11명이 뛰지만 11명은 팀이 아닌 상태나 마찬가지랄까?

선수들의 모든 플레이는 팀의 퍼포먼스를 최대화하기 위해 존재해야 함에도...
지난 바레인전에서 나타난 경기 내용은 아시아 정상급의 선수 11명이 뛰는 경기가 아니었다.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는 중앙 공격수의 대시 속도 및 위치와 엇박자
중앙에서 침투하는 공격수를 위한 전진패스 상황에서 한 번 더 치고 나가거나 횡으로 열어주는 더딘 연결
수비수들이 공을 잡은 상황에서 미드필더들이 빈 곳으로 움직여 주는 플레이의 실종

첫 득점 장면
이천수의 프리킥 후 김두현의 '개인능력'으로 득점

첫 실점 장면
중앙 공격수의 실수, 그러나 누구도 그 실수를 커버하지 못했다는 점

두번째 실점 장면
김정우의 실수, 그러나 당시 김정우에게는 백패스와 횡패스 옵션밖에 없는 상황...
누구도 김정우의 공을 받아 공격으로 전개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더욱이... 김정우의 실수 상황에서 중앙이 뚫려 버릴 때 양쪽 윙백은 수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동국의 득점 미스 장면
슈팅 타이밍에서 골키퍼를 제쳤다.
순간적으로 재치있는 판단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은 물론 나머지 동료 선수들도 한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좀 더 완벽한, 멋진 골을 위한 개인적인 욕심이었다.
당근... 이런 장면에서 100%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팀에 죄를 짓는 꼴이다.
이천수가 제 타이밍에 밀어 준 그 좋은 찬스에서는 바로 슈팅을 연결하는 것이 득점 확률도 높을 뿐더러, 경기의 리듬에도 맞아 떨어지며, 이천수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김동진과 송종국
두 선수 모두 공격력도 좋고 경험도 꽤 된다. 그런데... 뭐랄까, 좀 소극적인 플레이랄까?
보다 활발한 공수 움직임이라든가 중앙 플레이어들을 위한 협조가 약했다.

염기훈-이동국-이천수
셋이 포워드를 구성했지만... 순간순간마다 각 선수는 고립된 상황에 놓인 적이 많았다.
측면에서 나홀로, 중앙에서 나홀로...
김두현을 아래로 두면서 셋 사이에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움직임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백패스와 횡패스의 남발?
전방에서 움직이며 받아주는 선수가 없고, 나도 수동적으로 공을 받는 이상,
조여오는 상대를 피해 공을 줄 수 있는 곳은 후방이나 옆 밖에 없으며
꾀많은 상대는 그 틈을 놓지지 않는 법이다.

선수들이 게을렀을까?
날이 너무 덥고 습해서 죽을 지경이었을까?
감독의 전술적인 미스였을까?

물론, 그런 요인도 있긴 했겠지만...
아시안컵에 나서기 전의 평가전 때 보여줬던 모습이 사라진 것은
아무래도 사우디와의 첫 경기가 어정쩡하게 끝나면서 하나의 팀이라는 고리가 느슨해진 것이
첫번째 원인으로 보인다.

사우디전...
승점 1점 외에 남는 것이라고는 김치우와 오범석에게 뒤집어 씌울 패배의 핑계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런 경기는 늘 이렇게 그 다음 경기에서 무기력한 팀 플레이를 낳곤 한다.

'동료들에 대한 믿음과 나의 희생'이라는 팀의 중심이 사라지고
'동료가 해 주겠지...'라는 마음과 '나는 면피하자...'라는 분위가가 더 강해진다.
선수들의 정신상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 그렇게 간다는 말이다.
어이없는 실수, 너무나 어정쩡한, 시덥잖은 구실로 팀이 목표로 하는 성과를 얻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무기력함이랄까?

김두현의 첫 골이 너무 빨리 터져버렸으며
설상가상... 전반 막판에 동점을 허용해 버린 흐름 자체가 우리 팀을 무기력의 나락으로 밀어 버렸다.
수비력의 문제를 비롯해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운빨 조차도 지독하게 우리에게 비협조적이었다.

아마도 마지막 인도네시아전에서는 바레인전의 충격파로 인해 다시 단단한 팀으로 나설 것 같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인도네시아전에서 단단한 팀으로 거듭나면서
8강 이후에 팀 컨디션이 다시 상승무드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자력으로 8강에 올라갈 수는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바레인전처럼 팀이 갑자기 느슨하게 굴러갈 때
다시 파이팅 넘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선수가 없다는 점이다.
예륻 들어, 바레인전처럼 경기가 무기력하게 흘러갈 때 방방 날아다니는 선수가 한 명만 있었어도
그렇게까지 허무한 패배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김상식?
그의 역할이 중요하긴 했지만, 그는 충분히 애를 쓰면서 분전했다.
만약 경고 누적 문제가 없었다면 김상식은 경고 하나 정도는 받아먹는 희생도 감수했을 것이다.

그럼, 누구?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동국, 김두현 중 한 선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방방 나는 선수가 있을 때, 경기는 활기넘치고 상대는 괴로우며 우리팀은 힘을 얻는다.
첫 골을 멋지게 뽑으며 기분좋게 출발한 김두현이나,
아시안컵은 안방무대처럼 날아 다닐 수 있는 이동국...
두 선수 모두 사우디와의 1차전에서 힘을 비축했으니
만약 둘 중 한 선수만 미친척 하고 날아 다녔으면 경기 양상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아쉽다!
하필 두 선수 모두 최고의 컨디션으로 바레인전에 나서지 못했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

8강 진출 여부를 떠나서, 제대로 된 팀으로 거듭나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

내 동료가 잘못해서 경기를 못한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팀이 잘못했다는 점을 빨리 알아차릴 것!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결과적으로 나타난 모든 결과는 특정 선수 몇 몇의 실수가 너무 두드러져 보이니까...

하지만, 억지로라도 팀 빌딩을 해야만 한다.
감독이 호통을 치든지, 주장이 분위기를 다시 다잡던지, 팀의 고참들이 결연한 의지를 보이던지...
모든 선수들과 코칭 스텝, 벤치의 후보 선수들마저 100% 경기에 몰입하는 팀으로 빨리 돌아와야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의 프랑스...
조별 예선에서는 '노쇠한 닭' 취급을 받던 팀이
지단의 투혼과 열정을 바탕으로 결승까지 올라가지 않았는가 말이다.

팀의 동력을 다시 찾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