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으로서, 야구가 부러울 때

2006. 12. 5. 17:57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을 보았을 때
그냥 주인공의 직업이 야구인으로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야구의 묘미, 야구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절묘하게 조화된 멋진 영화였다.
그 영화 속 주인공(임창정)의 직업이 야구심판이 아닌 축구심판이었으면 했다.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었을 때
지금까지 몇몇 축구 소설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야구 소설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아니 하나 같이 그 스포츠의 묘미를 전달하거나, 그 스포츠의 배경이 되는 사회나 문화를 기술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을 뿐.... 재미라든가 문학적 가치를 느껴보기 힘들었다. (작가들에겐 미안하지만...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소설적 재미와 구성은 물론이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기록 다큐멘터리이면서, 한 팀을 사랑하는 팬의 시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최근에... 동대문 야구장 철거 반대 시위를 보면서
프로야구 선수협을 비롯해서 일선 야구인들이 동대문 야구장 철거 반대를 위해 몸으로 나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 민간인 족쟁이... 동대문 운동장이 헐린다는 사실도 제대로 몰랐었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그냥 아쉬움 정도만 느꼈을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중심에 선 스타 선수들이 시위에 나서고, 미국에서 뛰지만 김병현 선수가 미니 홈피를 통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그것은 어떤 힘이나 정치논리, 밥그릇 싸움 따위에 의한 시위가 아니라...
야구인들 스스로가 동대문 야구장에서 겪었던 그들만의 소중한 추억과 역사의식, 그 가치를 지키고자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앞장서서 나서는 스타 선수들의 행동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야구인로서... 스스로의 추억과 자산을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공통된 인식이 부러운 것이고, 그런 소중한 추억을 지금까지 하나 하나 그들만의 자산으로 쌓아온 '야구'가 부러운 것이다.

....

축구, 그리고 축구인...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할 것 같다.
인기를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은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으고, 온 나라를 뒤덮는 광란의 응원 물결도 좋지만...

하나씩 하나씩 사람들의 가슴속에 추억처럼, 역사처럼 쌓일 수 있는 각자만의 에피소드가 더 많아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다 기억하는 흔하디 흔한 인기 에피소드가 아니라
나 혼자만의 소중한 에피소드, 내 일상의 아주 자연스러운 한 조각처럼 느껴지는 에피소드 말이다.

그런 에피소드들 각자의 가슴속에 가질 때,
그런 에피소드를 차곡차곡 쌓아 온 작가나 영화 감독이 있을 때,
... 멋진 소설과 멋진 영화 속에서 축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