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 아쉬운 마음으로 하노버에서 발길을 돌립니다.

2006. 6. 24. 18:47월드컵 여행 - 2006 독일/6.하노버


6월 24일 아침입니다.
한국은 지금 저녁이겠군요.

우리의 무한한 열정과 희망을 뒤로 한 채
경기는 아쉽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어제 밤 늦도록 독한 술을 몇 잔 마셨더니
아직도 머리속이 멍멍하군요.

이곳에서도 심판 판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저 역시도 석연찮은 마음이 크지만
심판, 더 나아가서 심판의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기에
우리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네요.

왜 하필이면 우리가 한참 공격을 퍼부으면서
만회골이 거의 다가오는 시점에 그런 판정이 나왔는지
원망스럽기만합니다.
차라리 첫 골을 그렇게 내 주었다면 모를까...

우리팀의 가장 확실한 득점원이자 타켓맨인
이동국의 부재도 스위스전에서는 더욱 커보이더군요.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투혼이 무엇인지,
진짜 축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우리 선수들과
마지막 주심의 휘슬이 울릴때까지 포기하기 않고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 붉은악마들의 모습에서
이제 우리도 당당히 세계 축구의 주역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경기를 시작하기 4시간쯤 전에 숙소를 나섰습니다.
여전히 스위스 팬들로 거리가 거의 채워져 있긴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비해서 한국 팬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 그리고 숙소에서 채비를 하고
경기장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선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스위스 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시내 중심의 카페


대한민국도 무리지은 모습이 보이고



라이프찌히에서 만났던 열혈 페인팅 남아들



터기 사람들이 한국을 응원하는 것도 이채로웠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는데, 터키와 한국이 매우 가까운 나라가 된 것 같아요.
스위스 때문에 월드컵 본선에 나서지 못한 반발심도 있겠지만
터키 사람들은 우리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경기장에 도착해서 보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노버 중앙역 부근의 중심가에서는 스위스 팬들이 압도적이었는데
막상 티켓을 손에 쥔 스위스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여전히 관중석의 대부분은 스위스 사람들이었지만
충분히 맞짱 한 번 떠볼 만큼 우리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생기더군요.

경기장에는 예상보다 많은 대한민국의 팬들!!!

선수들이나 붉은악마들이나
마지막 한 조각의 열정까지 다 바친 경기였습니다.
쓸쓸하고 어깨도 처지고 허탈하고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아쉬움이 남지만...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경기를 했습니다.
우리 선수들, 그리고 축구팬들에게는
위로가 아닌 개선 행진곡이 더 어울리는
그런 멋진 밤이었다고 기억하겠습니다.

열정... 함성... 하지만, 하늘까지 미치지는 못했을까요?


경기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는 선수들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대들의 투혼과 열정에 박수를!!!)


텅 빈 경기장에 한 참을 혼자서 서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진력을 다한 경기에서 패한 후에는 텅빈 경기장을 한없이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마치 경기중에 뿜어내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면서 아쉬움을 달래곤 하죠.

이제 이 경기장은 또 다른 서포터들의 꿈과 희망과 함성으로 채워지겠죠...
그리고, 그 속에는 열정을 다한 우리의 함성도 메아리칠거고....
우리는 또 다른 경기장에서 또 다른 전설을 만들기 위해 달리고...

아... 젠장!
사진을 올리고 있는 지금까지도 쨍쨍하게 우리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것 같습니다...


...................


현지에서 만나는 외국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국 축구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강팀을 만나서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와 끈질김
온 힘을 소진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는 에너지와 열정...

경기장에서 만난 한 독일 아저씨는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를 본 후 자기는 한국팀의 팬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투혼' 밴드와 '무한열정'이라는 패치를 단 그 아저씨는
이 두 단어가 상징하는 것이 바로 축구이며
그걸 보여주는 팀이 바로 한국팀이라고 했습니다.

패배는 아쉽지만 아직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축구도 결코 여기가 끝은 아닐겁니다.

아쉬움도 크고
우리의 경기도 더 이상 없겠지만...
다 함께 외쳤던 그 열정으로 월드컵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역시...
남은 체류기간 동안 아직 끝나지 않은 월드컵을 마저 즐기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