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렌] 내몽골의 끝, 황사가 시작되는 곳

2006. 5. 31. 10:46월드컵 여행 - 2006, 독일까지 유라시아횡단/5.울란바토르(몽골)

얼렌(Erlian)
중국과 몽골의 접경에 있는 중국측(내몽골) 국경도시입니다.
그리고, 매년 봄이면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황사가 시작되는 곳이 이 부근입니다.

얼렌에 도착한 우리는 낯선 사람의 손짓을 따라 차에 올랐고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명주주점(明珠酒店)'이라는 여관!

우리는 열차를 타야 하는데 왜 이곳으로 데려올까?
두려움과 궁금증은 더해갔는데...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은... 오후 늦게 열차편이 있기 때문에
새벽에 도착한 사람들은 대개 근처 여관에서 낮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이 여관 관리인이 조선족 청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북경에서 송청운님이 워낙 세심하게 여러 차례에 걸쳐서 얼렌의 현지 여행사에
연락을 하니까 그쪽에서 한국말이 되는 사람을 수소문 했던 것입니다.
(말이 여행사지... 그냥 현지 사람입니다.)

우선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것도 너무도 낯설고 두려운 가운데에
같은 동포를 만난 것이 반가웠습니다.
우리말이 서툴기는 하지만 대화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뜻하지 않게 통역을 얻게 되었고
같은 동포라는 이유로 금방 친해지고 서로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태워 온 사람(몽골사람)이 열차표를 끊어 올테니 여권을 달라고 했습니다.
여권을 달라...
아마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낯선 도시의 낯선 사람이 여권을 달라고 했다면
마찬가지로 바싹 긴장했을겁니다.
잘못하면 미아 신세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계속해서 여권을 줄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기차표 끊어야 한다면 내가 같이 가면
된다면서 계속 여권을 내놓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여관에 묵을 때도 여권을 프론트에 맡기고,
통상 그렇게 하니까 문제 없다는 조선족 청년의 말을 듣고서야 여권을 건네줬습니다.
(그치만 불안감은 계속...)

일단, 방으로가서 휴식도 좀 취하고 얼렌 시내를 좀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객실은 비교적 깨끗했지만 시설은 많이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전화기가 없는 것은 기본(?)이고
샤워기를 틀어도 물이 제대로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변기의 물이 내려가지 않아서 우리를 당황하게 했고
더 황당한 것은 우리 객실의 화장실을 우리만 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_^)
왠 낯선 중국 여자가 우리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가더군요.


간단히 세면을 하고나서 방에 찾아 온 조선족 청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름은 정원규.
나이는 스물 여덟이고, 고향은 장백산(백두산)이랍니다.
천진에서 살다가 작년 10월경에 얼렌으로 왔다고 하더군요.
'명주주점'이라는 여관의 사장이 한국사람이랍니다.
천진에서 자기가 일하던 회사의 사장인데, 얼렌에 여관 사업을 하면서
정원규씨에게 여관 관리를 맡겨 놓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참 친절하고 순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상냥하게 친절한 것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만난 동포라서
뭐 하나라도 더 배려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습니다.

일년에 한국 사람을 기껏해야 3-4명 만나는게 고작이랍니다.
한 마디로 얼렌은 보따리 상들의 무역 도시인데
몽골 사람과 중국 사람이 섞여서 사는 곳이랍니다.
사막이지만 지하수가 풍부해서 물은 걱정이 없고 날씨는 늘 맑다고 합니다.
다만...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려서 그게 불편하다고 하더군요.
(그 모래가... 한국에까지 날아 온다고 하니까 매우 놀라더라구요.)

별다른 고층 빌딩이 없는 사막 도시의 모습이 이국적이었고
짐을 들고 다니는 보따리상들이 많아서 그런지 택시들이 모두 봉고차 같이 생겼습니다.
여관 앞은 짐을 싣고 나르고 내리고 하는 보따리상들로 항상 북적거리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현지에서 우리를 안내하고 울란바토르행 열차표를 끊어주는 사람과
여행사쪽과 제대로 이야기가 안된 모양이었습니다.
이미 베이징에서 송청운님을 통해 비용을 송금했는데
현지의 안내인에게 그것이 전달이 안되었는지 돈을 달라고 하더군요.

베이징의 송청운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고, 송청운님이 뭐라뭐라하면서 상황을 설명하고,
부족한 부분은 원규씨를 통해서 우리와 이야기를 하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우리가 미리 지불한 금액이 확인 되었고
대략 그 선에서 열차표를 끊어다 주기로 했습니다.

밤새 달려온 터라 시장끼를 느낀 우리는 원규씨와 함께 비장의 무기인
컵라면을 나누어 먹고 커피를 한 잔 했습니다.
원규씨는 한국에 대한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컵라면도 맛있다고 했고, 휴대폰이며 라이타며 담배며...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물어보고 살펴보고 그랬습니다.

비단 원규씨뿐만 아니라, 얼렌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우리 일행과 한국에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우리를 보면 힐끔힐끔하면서 '항궈런(한국인)'이라고 말하고
뭔가 꺼리가 있으면 바디 랭귀지를 동원해서 말을 걸어 주고...
한 편으로는 불안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도... 길을 걷다보면 '오나라 오나라...'하는 대장금 주제가의 중국어 버전이 들리고
사람들은 요즘 '보고 또 보고'를 제일 재미있게 본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보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는 것도 당연하지요.
(한류 한류 했는데... 이렇게 내몽골의 작은 국경마을까지 그럴줄은 몰랐죠.)

.....

점심은 원규씨의 안내를 받아 얼렌에서 젤 맛있다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원규씨는 소고기 요리를 주문했고
음식 선택의 황제 인철형은 야채요리, 닭고기 요리, 돼지고기 요리를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맥주까지!
아무리 낯설고 불안해도... 먹는거 하나는 제대로 합니다. ^_^
(이렇게 잔뜩 시켜도 우리나라 돈 1만원 정도밖에 안합니다.
한 접시에 나오는 양도 우리나라 중국집의 세 배쯤 됩니다.
맛이요? 중국요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원규씨가 시킨 소고기 요리는 소고기 말린 것을 기름에 튀긴 것인데
맛은 고소하고 좋지만 좀 질기고 짰습니다.
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말려서 둔다고 합니다.
다른 요리도 많아서, 이 소고기 요리는 남은 것을 싸가지고 열차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작은 도시를 돌아보고 다시 숙소에 와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울란바토르행 열차가 3시에 출발한다고 했고, 낮 시간에 여관을 쓸 경우
2시까지는 방을 비워야 한다고 해서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내려 왔고
사람 좋은 원규씨야 사진도 한 컷 찍었습니다.



그런데, 열차표를 끊어준다는 사람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오늘은 열차가 6시에 출발하기 떄문에 아직 표는 끊지 못했는데, 곧 끊어다 주겠다.
역에 근무하는 자기 친구한테 이야기 다 해 놓았다.
열차표는 자밍우드까지만 끊을 것이고, 자밍우드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객실에서 차장에게 돈으로 주면 된다.
등등등...

자밍우드는 중국-몽골 접경에서 몽골쪽 국경도시입니다.
그러니까, 국경을 사이에 두고 중국쪽은 얼렌, 몽골쪽은 자밍우드입니다.
우리는 얼렌에서 기차를 타고 자밍우드를 거쳐 울란바토르로 가는 거지요.

모든 것이 불안한 저희로서는 정말이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어떻게 손 쓸 방법도 없고, 무조건 그 사람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원규씨는 별일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일단 여권을 받을 수가 있어서 걱정거리 하나는 덜었고
너무 무턱대고 의심할 것이 아니라, 현지 안내인을 믿어보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관 로비에서 기다리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구경거리가 되고...
이미 적응을 마친 저와 인철형은 그런 사람들의 말을 다 받아주고, 또 즐기고...

대략 4시뜸 되니까 안내인이 다시 왔습니다.
우리를 태우고 얼렌 역으로 데려가더니 국제열차 타는 곳의 역무원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는 우리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밍우드행 티켓과 출국 신고서
그리고 자밍우드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가는데 필요한 표값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사람 말로는...
외국인이 열차표를 끊게 되면 역무원들이 바가지를 씌우기도 하고
표가 있는데도 없다고 하고... 여러가지로 불편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넘 의삼하지 말고 자기를 믿으라고 하더군요.

뭐... 저희로서는 믿지 않고 다른 방법도 없잔습니까?

결과적으로 우리가 너무 의심하고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 말대로 일이 다 무사히 처리 되었으니까요.

오후 4시 30분쯤.
우리는 얼렌역에서 중국쪽 출국 심사를 받고 플랫폼으로 들어갔습니다.
원규씨와도 아쉬운 작별을 하고...

6시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기다리는 동안
대합실 내에 있는 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 마셨습니다.
카페 아가씨는 우리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아채고는
신기한 듯 우리를 보더니만 장나라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는 서비스를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 이런 상황이 상상이 가세요?
끊임 없는 의심과 긴장의 공포 속에서 하루 종일 이와 비슷한 일들을
내몽골의 끝자락에 있는 국경 도시에서 체험한다는 것이 상상이 가십니까?
하여간...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상상 밖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장장 12시간 동안의 어색함과 긴장속에서 열차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자밍우드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가는 열차표를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그냥 안내인의 말대로 부딪쳐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불안해하면서 의심하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기도 했구요.

울란바토르까지 제대로 갈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중국을 떠나 몽골로 향하는 기차는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제가 생겨도 몽골에서 해결하면 되겠죠.

얼렌을 거쳐서 몽골로 들어가는 루트는 여행객들에게 권할만한 루트는 아닌거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그쪽 루트로 여행을 하시게 된다면
얼렌에 도착하셔서 명주여관에 연락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낯선 도시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조선족 동포는 만날 수 있을테니까요.
('명주주점(明珠酒店), 전화: 13847926587)



PS) 대합실에서 4명의 외국 여행객을 만났습니다.
그들도 울란바토르로 간다고 했는데, 한 사람당 100 위엔에 열차표를 끊었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열차표 못 끊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끊었을까?

확인은 못했지만, 저희 생각에...
41 위엔짜리 자밍우드까지 가는 열차표를 100 위엔에 바가지쓴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자밍우드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가는 표값만 해도 150 위엔쯤 하니까
정상적이라면 얼렌에서 울란바토를까지 약 200 위엔 정도가 나오거든요.

그 친구들은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머... 넷이서 뭉쳐 다니니까 잘 해냈겠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