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주:포항 - 남기일 축구에 질식사!

2021. 3. 10. 14:55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 제주:포항, 2021.03.09, K리그1 Round 3 (집관)

제주(1):(0)포항, 패

 

안될 때는 여러가지가 두루두루 겹치면서 나타난다. 지난 두 경기에 이어 이번 경기에서도 선제 실점을 했다. 실점 장면의 공통점은 1) 전반전 이른시간, 2) 페널티 구역 밖에서의 슛, 3) 상대팀의 한 번 내지 두 번 뿐인 득점기회에서 실점을 했다.

 

전체적으로 수비가 불안하다기 보다는 순간순간의 상황에서 가끔 틈을 보이고 있는데, 경기 흐름을 보면서 수비를 잡아주고 조율해 주는 역할이 없는 것 같다. 김광석, 하창래가 빠진 상황이기 때문에 골키퍼인 강현무나 새로 합류한 그랜트가 일부 그 역할을 해 주었으면 싶다.

 

전북은 종료직전 쌔뽁으로 승점 3점 챙기던데, 우리한텐 그런 운빨도 없나... ㅠ.ㅠ

 

 

남기일의 질식 축구

아마 국내 감독 중에 질식 축구의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스쿼드나 전력이 떨어지는 팀을 이끌고 더 높은 곳으로 이끈 실적이 말해주듯이, "승격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이, 남기일 감독은 냉정하게 꾸역꾸역 승점을 긁어 모으는 현실적인 축구에 참 강한 것 같다.

 

전방 공격수부터 시작되는 타이트한 질식 압박을 90분 내내 이어간다. 후반으로 갈수록 질식의 힘이 떨어지기도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그 전략을 이어간다. 후방 빌드업 따위는 접어두고 공격의 실마리와 득점의 기회는 전방 높은 곳에서 공을 기습적으로 차지한 후에 얻어지는 보너스로만 가능하다. 최소 승점 1점은 자력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하고, 그 다음에야 나머지 2점을 따던가 한다는 식이다.

 

상대팀 입장에선 플레이가 답답할 것이다. 특히, 완전 상위팀이 아닌 경우에는 이런 남기일 감독의 전략을 정면돌파할 자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별 소득없이 경기를 끌려다니기도 한다. 지켜보는 홈 팬들도 다소 재미가 없을 것이다. 두들겨 패듯이 공격하면서 이기면 좋겠는데 좀처럼 그런 홈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2부로 떨어지건 말건 우리는 공격 앞으로를 외치는 거라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제주처럼 갓 1부로 올라온 팀 입장에서는 승점 1점이라도 쌓아가는게 중요하다.

 

문제는 선수들이다. 걔들도 스타가 되고 싶고 주목받고 싶은 청춘들인데 팀을 위해 맨날 전방 압박만 펼치는 전략이 맘에 들겠는가? 그것도 90분을 한결 같이! 대개는 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 틈이 보이고, 후반 중반쯤 되면 그 틈이 확연하게 벌어지곤 한다. 경고가 누적되기 시작하고 자잘한 실수가 나오고 집중력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시즌이 계속될수록 균열이 생기고 이탈자가 나온다.

 

그런데... 남기일 감독의 팀은 그런걸 견뎌낸다. 신기하다.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꼬시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포항 같으면 팬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선수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을지도 모르는데 남기일의 팀은 묵묵히 그걸 이겨낸다. 아마 이렇게 초반을 견뎌내면서 최소한의 승점들을 착실히 쌓아가다가 수비가 어느 정도 안정된 후에는 뭔가 다른 시도를 하지 않을까 싶다.

 

일정이 야속해 ㅠ.ㅠ

3/6(토) 저녁 7시 강릉 경기, 3/9(화) 오후 4시 30분 제주 경기. 대한민국 도서산간의 북쪽 대표 지역과 남쪽 대표 지역으로 두 경기 연속 어웨이, 게다가 이동 및 휴식은 단 이틀. 포항에게 너무 가혹한 순회공연 일정이 주어졌다.

 

차라리 시즌 중반이었으면 모를까... 스쿼드가 제대로 갖춰진 후에도 슬로 스타터 기질이 있는 포항인데, 하물며 외국인 선수들조차 합류하지 않은 시즌 초반에 도서산간 투어까지 해야하는 일정이 야속하다.

 

반면 제주는 전북과의 경기를 나쁘지 않게 마친 상태에서 홈 2연전!

돌려막기의 한계

세 경기째 같은 패턴의 돌려막기를 시도했지만 제주전에서는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팔라시오스-송민규 작업라인 변경, 오범석 끼워 넣기, 신광훈 돌려 막기, 강상우 회전문 기용도 안먹혔고 고영준, 이현일 투입효과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강상우 회전문 기용 전술이 그나마 좀 먹혔지만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제주가 끝까지 잘 물고 늘어졌다. 만약 후반부터 제주의 질식압박이 틈을 보였다면 한 골은 들어갔을 것 같다.)

 

이런 경기, 이런 상황에서는 전체적인 경기력으로 눌러 이기기 보다는 임팩트 있게 결과를 따낼 수 있어야한다. 좀처럼 슈팅 찬스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의 찬스을 집중력 있게 골로 연결하던가, 중거리 슛, 아니면 지난 강원전처럼 세트 피스에서의 득점을 따낼 수 있어야한다.

 

어쩌면 이게 우리 포항이 올 한 시즌을 보내면서 몇 번을 봐야 할 현실일수도 있다. 타쉬, 크베시치, 그랜트가 정상 합류하면 한 결 여유가 생기겠지만 스쿼드가 빠듯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즌 초반의 임기응변 전략으로만 쓰고 끝나는게 아니라 몇 번 더 써먹을 플랜 B로 확실히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세 명의 새로운 외국인 선수 모두 아직은 실전 적응과 검증이 안된 상태다. 언제나 그랬다. 100% 이상적으로 흘러간 시즌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그마져도 익숙하게 견디면서 하나하나 헤쳐 나가는게 늘 우리의 방식이었다.

왜 우리는 늘 플랜B로 시즌을 시작해야 하는가! 아~ 테스형, 우리는 왜 매년 이래.... ㅜ.ㅜ

 

이호재 투입이 좀 더 빨랐다면?

후반 막판 투입보다 조금 앞당겨 투입했으면 나았을까? 김기동 감독의 돌려막기 신공도 안먹히고, 선수들의 몸은 무겁고, 상대편 제주의 압박은 계속되는 상황에서 차라리 중앙 스트라이커의 정면 대결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이호재의 플레이는 지난 개막전(3/2 인천전) 때 딱 한 번 본 것이 전부였지만 간만에 만난 힘, 높이, 체격, 스피드를 갖춘 굵직한 최전방 공격수의 모습이 반가웠었다. 그런 모습을 좀 더 보고 싶은데 아직은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몇 가지 짐작을 해 본다. (어디까지나 짐작 & 상상)

  • 강상우를 중앙으로 옮긴 후 그림이 몇 개 만들어졌다. 하나만 제대로 나오면 되는건데... 일단, 믿는 도끼를 기다려보자.
  • 이호재는 아직 10분 이상을 뛰기에는 패턴이 너무 단순하다. 수비가 촘촘하고 많이 뛰는 팀에는 먹히지 않을 것이다.
  • 이호재는 다음 경기, 아니면 다다음 경기쯤에 써먹자. 골을 기대하기 보다는 다음을 위한 예열 기회로 쓰자.

나는 답답하지만... 감독에게는 뭔가 이유와 계산이 있을테니 기다려 볼 수 밖에!

울산 나와라!

다음 경기(3/13, 토) 상대는 울산! 몽땅 올인해야 하는 경기! 아직 100% 갖추어지지 않은 스쿼드지만, 이런 기회에 빡세게 한 번 쳐달리면 금새 탄탄해 지는 기회가 되기도한다. 승패를 떠나 새로 발을 맞추는 선수들이 100% 이상의 힘을 쏟아내면서 기존의 선수들이 뿜어내는 One-team의 정신을 자각할 수 있는 경기다. 그리고, 그걸 잘 해내는 것이 포항의 강점이기도 하다. 이기건 지건 약이 되는 경기가 바로 울산전이다.

 

울산이 여전히 우리보다 위에 있다. 승점 3점차. 그들이 9골을 넣고 1점을 잃을 동안 우리는 5골을 넣고 3골을 먹었다. 맞대결에서 한 방에 따라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