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축구에서 한 수 배우기

2010. 7. 30. 14:13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독일과의 4강전은 실제 전력에 비해서 점수차가 좀 많이 나왔네요.
2골 정도의 격차는 존재하는 것 같고, 이걸 얼마나 줄이는가가 한국의 과제였다면 얼마나 도망가느냐가 독일의 과제였을텐데... 결국은 독일의 바램대로 경기가 흘러갔습니다.
약간의 운도 독일에게 있었고 우리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약점을 보일 때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사실 여자 축구에서 독일과 같이 힘의 축구를 구사한다면 대적할만한 팀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일이 구사하는 축구는 여자 축구 그 이상의 힘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자 축구가 좀 더 활성화 되고, 좀 더 많은 선수들이 좀 더 많은 연습과 경기를 한다면 힘의 축구를 무너뜨리는 기술과 조직력의 축구가 나오겠지만 말입니다.

오늘날의 남자 축구는 힘과 스피드가 지배합니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상대방을 최일선부터 최대한 압박하고, 반대로 우리가 공격권을 잡았을 때는 신속하게 전진합니다.
과거에는 각 나라마다 고유의 스타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팀들이 힘과 스피드를 기본으로 갖추고 시작합니다.
그만큼 각 나라의 특색이 없어졌고, 경기는 빨라졌지만 과거와 같이 입이 쩍 벌어지는 장면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한 대회를 지배하는 히어로도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지요.
심하게 표현한다면 표준화된 축구가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우승은 사실 의외의 결과입니다.
물론 충분한 힘과 스피드를 갖춘 스페인이지만, 그들이 보여준 축구는 극대화된 조직력과 승리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들어나는 멋진 축구였습니다.
영원한 우승후보인 브라질조차도 실리축구를 표방하는 시대에 스페인 같은 축구를 구사하고, 더 나아가 월드컵까지 제패했다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여자 축구가 우리에게 준 것은 4강의 성적만이 아닙니다.
더 강하게 상대를 저지하고, 더 빠르게 움직이는데 초점을 맞춰 온 남자 축구에 비해서 여자 축구는 훨씬 창의적이고 매끈한 축구를 보여줬습니다.
마치 20년전, 30년전의 볼거리 풍부한 남자 축구처럼 말입니다.
보다 다양하고 자유롭고 자신감과 골에 대한 열망이 나타나는 즐거운 축구였으며, 선수들 또한 승리를 위한 기계가 아니라 자유롭고 신명나는 플레이어 였습니다.
유럽의 축구과 남미의 축구가 달랐고, 아프리카의 축구는 신선했으며 아시아의 축구는 그 열정이 돋보였습니다.

비록 승리는 힘과 스피드를 지배한 독일의 차지였지만, 우리 팀이 보여준 창의적이고 변화 무쌍한 축구가 충분히 빛나는 경기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독일과는 다른 스타일의 경기였습니다.
독일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도 독일처럼 체격과 힘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소연 선수가 보여준 골 장면은 독일 선수들은 보여줄 수 없는 우리 여자팀만의 골 장면일 듯 합니다.
비록 경기의 많은 부분을 독일이 지배했고, 결과 또한 독일의 차지였지만...
우리 선수들은 충분히 우리의 축구를 보여줬지요.
독일과의 격차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4강에 들었다는 자체 만으로도 우리 역시 세계적 수준의 축구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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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은 향후 몇년간의 축구 트렌드를 바꿔 놓을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스페인 같은 축구를 구사할 수도 없고, 설사 구사한다고 해도 스페인 같은 결과를 얻어 내기는 힘들겁니다. 스페인이 스페인 스타일의 축구를 멋지게 해냈기 때문에 월드컵 우승도 가능했던 것이니까요.

우리 남자 대표팀은 어떨까요?
물론 우리도 스페인 처럼 멋진 조직력을 갖고 싶을테고, 또한 그에 걸맞게 노력을 할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축구는 그동안 세계 수준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상당 부분 유럽형 축구의 옷을 입어 왔습니다.
또한 그만큼의 발전을 이루어 올 수 있었고요.
세계화 선진화를 향해 달려간 결과 세계적인 수준에는 많이 근접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제는 뭔가 잃어버린 것을 찾았으면 합니다.
조금은 우리 본연의 모습,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우리의 스타일을 찾았으면 합니다.
여자 선수들이... 독일에게 크게 끌려가면서도... 그들의 힘과 체격에 고전하면서도...
90분 내내 흔들림 없이 우리의 경기를 한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밑바탕을 다져 왔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스타일, 다른 팀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우리만의 스타일이 나올 때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