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전이나 일본전이나, 변한건 없습니다.

2010. 2. 15. 13:20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중국에게 3대0으로 졌고, 일본에게는 3대1로 이겼습니다.
기용된 선수들에 약간의 차이가 있고, 상대팀이 다르고,
우리 선수들의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달랐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전에서는 절망, 일본전에서는 희망을 봤다고 말하기는 힘들지요.
결과와 내용이 달랐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일본의 플레이가 답답했습니다.
2대1, 3대1로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전혀 모험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작은 플레이로만 일관하는 일본의 플레이는
상대팀이지만 너무나도 답답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끌려가는 경기에서는 한국처럼 필요에 따라 과감하게 미드필드 플레이를 생략한 채
한 방을 노리는 단순하면서 속도감 있게 반복적으로 두드려대는 공격전개가 더 유용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팀 입장에서는 파이터형 미드필더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형민과 김재성, 김정우는 모두 파이터형 미드필더들입니다.
상대팀과의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동료들의 빈 공간을 끊임없이 채워주며
TV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궂은 일을 해냅니다.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를 상대로도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플레이 스타일의 선수 없이는 미드필드에서 상대팀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정우가 비록 퇴장을 먹긴 했지만 그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가 있었기에
우리팀은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는 경기 운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미드필드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일본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파이터형의 선수들 외에도 박지성, 기성용, 이청용은
경기에 나서지도 않았으니까요.^^

문제는 역시 최전방 공격입니다.
이승렬은 비록 골을 기록하긴 했지만 혼자하는 플레이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동국은 무게감 있는 플레이로 상대 수비에 상당한 중압감을 주긴 했지만
제대로 된 단독 찬스에서 골대를 맞추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영점조정이 덜 된 상황.

이근호는...
글쎄요... 허정무 감독과 많은 언론에서는 박주영의 짝으로 이미 낙점을 받았다고 평가하는데...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주고, 상대방의 수비 반경을 넓게 흔들어 놓는 재주는 있지만
득점에 이르는 촌철살인의 한 방이 없습니다.

우리는 줄곧 박주영-이근호 투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박주영-이동국 조합을 제대로 가다듬을 기회가 없었다는 점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두 선수는 각자 특색있는 원톱의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 투톱으로 가동될 수도 있으니까요.
반면 이근호는 투톱 중 한 명의 조력자 역할로 플레이가 제한됩니다.
일본전 후반에 잠시 이근호 원톱이 가동되긴 했지만
역시나... 스트라이커의 무게감 보다는 활발한 윙 포워드였습니다.

.......

지금 우리팀은 해외파 선수들과 국내파 선수들간의 전력 불균형이 매우 심각합니다.
이것은 실력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두 개의 다른 대표팀이 운영되는 것처럼
경기 스타일이나 내용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국내파 선수들이 기본 뼈대를 구성하면서 해외파 선수들이 플러스 알파가 되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우리팀은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치르는 과정에서부터
해외파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었기 때문에 국내파 위주로 팀을 꾸린 지금 상황에서는
또 하나의 대표팀이 만들어진 것처럼 어색한거지요.
여기서 다시 해외파 선수들이 소집되어 팀이 꾸려진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스타일의 대표팀이 될꺼구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월드컵 지역 예선을 무패로 통과한 이면에는...
애초부터 씨알 굵은 선수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팀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허정무 감독의 손에 의해 창조된 팀을 가질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지요.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해외파를 불러들여서 그들이 중심이 된 팀으로 경기에 나서겠지요.

그러나, 허정무 감독이 자신감이 있다면 이번에 한 번 더 국내파 위주로 밀어부쳐 보았으면 합니다.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 이청용, 박주영 없이...
남아공 전지훈련을 함께 했던 지금의 선수들로 코트디부아르와 맞붙어 보는 것입니다.

허정무 감독의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함께 전지훈련을 하고, 동아시아 대회를 함께 치렀던 선수들....
이들이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없다면
애초에 남아공 전지훈련은 할 필요조차 없는 전지훈련이 아니었는지요?

만약 유럽파 선수들 없이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을 제대로 치러 낸다면
우리 팀은 엄청난 상승 효과를 얻을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그런 상승효과 없이는 지난 아시아 최종예선 이상의 전력은 나오지 않을겁니다.

이제 허정무 감독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선수 선발 능력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팀을 만드는 능력 말입니다.
그리고, 이미 남아공/스페인 전지훈련과 동아시아 대회까지 함께 치른 팀이 있습니다.

이 팀을 믿는다면, 그리고 감독 스스로 훈련 성과가 있었다고 판단된다면
한 번 부딪쳐 보는건 어떨지요?

PS) 2002년의 대표팀을 생각해 봅시다.
황선홍과 홍명보 없이도 히딩크는 먼저 기본적인 대표팀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팀, 한 수준 높은 팀을 제시하면서
거기에 황선홍과 홍명보를 추가하여 더욱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었지요.

1998년의 대표팀도 돌아보지요.
황선홍이 부상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절망!.

지난 시즌의 포항은 어땠나요?
데닐손 외에는 수퍼스타급 선수가 없었고, 객관적으로 볼 때 선수층이 두텁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포항은 어느 팀보다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도 시종일관 안정된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출전 선수 몇 명이 바뀌고, 포지션 이동이 있더라도 팀의 경기력은 한결같았습니다.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약한 선수들이 뭉쳐서 강한 전력을 내는 것이 1차적으로 되어야합니다.
우리 대표팀... 유럽파 없이도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준비된 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