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이르쿠츠크] 바이칼의 도시에 오다!

2006. 6. 4. 10:15월드컵 여행 - 2006, 독일까지 유라시아횡단/6.이르쿠츠크(러시아)


6월 1일, 저녁 7시 35분.
울란바토르발 이르쿠츠크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당초에는 6월 2일에 울란바토르에 도착할 계획이었으나
우리가 알아본 내용에 비해서 열차가 훨씬 느리고
여러 곳에 정차를 하게 되어 있더군요.

열차 운행 시간표에 따르면 6월 3일 오전 8시경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로서는 예정된 날짜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야할뿐더러
모스크바와 바르샤바 등에 예약해 놓은 숙소 때문에
이르쿠츠에서 하루만 머물기로 일정을 수정했습니다.

....

열차에 오르면서 룸 메이트가 또다시 찌질이들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로 이동할 때, 찌질이들 땜시 넘 신경썼거든요.
이거 생각보다 스트레스 엄청 심합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좀 괜찮은 룸 메이트를 만났습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인데 5개월째 세계 여행을 하고 있는
젊은 커플이었습니다.

착하고 매너 좋은 친구들이었고 영어도 아주 잘했습니다.
더구나 우리와 같은 초행 여행자였기 때문에
함께 정보도 나누고 여행하면서 겪었던 일도 이야기하면서
지루한 여행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잠도 쉽게 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이 피곤하기도 했고, 또한 열차 여행에도 그만큼
적응이 된 탓이겠지요.
책을 좀 읽다가 잠이 술술술....

....

눈을 떠 보니 그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6월 2일)
열차는 몽골-러시아 국경의 몽골측 도시인 쉬크바타르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새벽 4시경에 도착을 했는데, 잠에 골아떨어진 나머지
아침 7시쯤이 돼서야 도착한 것을 알아차린거죠.

쉬크바타르에서 출국 심사를 한 후 오전 10시 45분에
열차는 다시 러시아로 출발을 하게 됩니다.

출발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열차를 내렸는데...

황당...

출발할 때 그렇게 길던 객차와 기관차는 다 어디가고
딸랑 객차 두개만 남아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몽골 국내선 열차는 떨어져 나가고
국제선 객차만 남은 것이었습니다.
오전 9시쯤 되니까 러시아 기관차가 나타나더니
남아 있는 국제선 객차와 연결을 하더군요.

쉬크바타르, 여행이 길어지면 개와도 대화가 가능합니다.

......

몽골의 쉬크바타르를 떠난 열차는 잠시 후
러시아의 국경도시인 나우쉬키역에 도착을 했습니다.

여기서 꽤 오랫동안 정차를 했습니다.
먼저 러시아 입국 심사가 상당히 오래 진행되었는데
이것저것 까다롭게 물어보면서 입국 확인을 해 주더군요.
입국 신고서 작성 내용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훨씬 많았습니다.

나와 인철형은 노트북이랑 월드폰(핸드폰)을 소지하고 있어서
입국 신고서의 해당 부분에 표시를 했는데...
입국 심사를 하는 러시아 사람이 말하기를
거기에 표시를 하면 무전기 같은 군사용 통신장비를 소지한 것처럼
되기 때문에 잘못하면 몽골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_^)

입국 신고를 다 마치고 마치고,
수거해 갔던 여권에 입국 스탬프를 받고나니까 오후 1시쯤 되었습니다.

자아~ 이제 러시아 입국까지 성공적으로 마쳤겠다!

열차 출발까지는 두 시간 정도 남아서
역 근처의 상점에서 간단한 먹을 거리를 사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왔다는 생각이 팍팍 들더군요.
울란바토르에서는 한국 사람들도 만났고
또한 한국말을 잘 하는 가이드의 도움도 받아서 전혀 어려운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울란바토르를 한국과 무척 친숙한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고요.

하지만... 러시아로 넘어온 순간 완전히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 하나를 먹을려면 손짓에 발짓에 눈짓까지 동원을 해야 했습니다.

(같이 여행하면서 느낀건데, 인철형의 먹는 것 고르는 능력은 탁월합니다.
음식의 생긴 모습만 보고 고르는데... 우리 입에 맞을만 한 것을
딱딱 골라 내더군요.)

점심식사를 하면서 맥주도 한 캔 부어 버렸습니다.
(러시아에서는 350미리짜리 작은 캔은 팔지도 않는지, 캔 맥주 기본이 500미리짜리!)

이번에 열차 여행을 하면서 느꼈는데
열차가 가장 오랜 시간을 잡아먹을 때가 국경을 통과할 때입니다.
그냥 국경을 넘어가는게 아니라
출국 심사와 입국 심사가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그것도 심사하는 사람들이 기차에 올라와서
일일이 객차를 돌아다니면서 심사를 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여기다 한 술 더 떠서, 양쪽 나라의 열차 운행 시간이
서로 다르다보니까 심사를 다 마치고 나서도 한 참이 지난 후에
출발을 하게 되는거지요.

몽골-러시아 국경의 경우, 새벽 4시에 열차가 도착했지만
오전 9시가 돼야지 출국 심사를 하는 사람들이 출근을 하게 되니까
그때까지는 그냥 열차가 역에서 기다리게 되는 것이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도 이런 환경에 서서히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월드컵을 보러 가기 때문에 일정에 따라 빡빡하게 움직이지만
열차 여행이란 것 자체가 빡빡하게 미리 정해진 스케줄을 따르기 보다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함께 즐기는 여행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시간 개념이 넉넉한(?) 중국이나 몽골, 러시아 같은 나라를
여행할 때는 더욱 느긋하게 여행하는 것이 좋겠네요. (^_^)

몽골에서 샀음. 내고향 물을 마시며 러시아로!침대가 너무 작죠? (인철형 살 많이 빠졌음 ^^)

............

나우쉬키역을 출발한 열차는 거의 완행열차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러시아 국내선 열차나 마찬가지거든요.)

조금 가다가는 작은 간이역에서도 타고 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1-2분씩 정차를 하곤 했습니다.

저녁무렵,
우리는 러시아 열차의 식당칸도 구경할 겸 해서
식당칸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습니다.

메뉴가 러시아 말로 되어 있어서 난감했는데
서빙하는 사람에게 주절주절 하니까 영어로 된 메뉴판을 가져다 주더군요.
(메뉴판에 음식 사진이라도 같이 있으면 좋으련만...)

크게 배가 고프지는 않아서 수프만 하나 시켜 놓고 맥주를 마셨습니다.
고기 수프를 시켰는데, 전혀 느끼하지 않고 맛이 깔끔하고 좋았습니다.
저녁식사 보다는 간단한 아침 식사로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한 참 하다가 저녁 9시경에 울란우데에 도착했습니다.
울란우데는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한 열차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만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이르쿠츠크까지가 시베리아 횡단 노선 중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합니다.
(바이칼호를 따라서 열차가 달립니다.)

하지만... 아름다우면 뭐합니까...
곧 해가 떨어지고, 창밖은 그냥 깜깜하고, 간혹 마을을 지나게 되면
작은 불빛들이 보이는 것이 전부인걸...

분명히 지금 밖에는 아름다운 바이칼호가 있을텐데...
쩝!
아쉽지만... 그냥 책이나 좀 보면서 잠을 청했습니다.

.........

새벽 5시경, 잠시 잠에서 깨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단잠을 자고 있는 상황)

창밖을 슬쩍 쳐다보니까 어스름한 새벽 어둠속으로
바이칼 호수가 보였습니다.
(이미 우리가 자는 사이에 열차는 바이칼 호수를 달리고 있었겠죠?)

부랴부랴 눈을 부비고 일어나서
담배 한 대로 정신을 수습하고
비록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새벽녘의 아름다운 바이칼 호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둠속의 바이칼 호수는 깊고 신비로워 보였으며
호수변 마을에서 작게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달리는 열차가 아니었다면 내려서서 사진이라도 하나 찍고 싶었는데
제 사진 기술이 모자란 탓인지
새벽녘에 달리는 열차에서 풍경을 담기가 어렵더군요.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차장이 객실마다 찾아 다니면서 이르쿠츠크 도착을 알렸습니다.
(열차를 타면서 차장이 차표를 수거해 갔다가
도착지가 가까워지면 차표를 돌려주면서 잠도 깨워줍니다.)


.......

오전 8시경
드디어 우리는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이르쿠츠크발 모스크바행 열차표를 구입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표부터 끊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몽골에서 우리를 가이드해 준 뽈또가
러시아말로 "6월 4일, 모스크바가는 열차표 2등석 2장 주세요!"라고
쪽지를 만들어 주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표를 살 수 있었습니다.

표를 산 후 택시를 타고 숙소인 앙가라 호텔로 이동했는데
처음에 300 루블 달라는 것을 인철형이 200루블로 깍았습니다. (^_^)

숙소는 생각보다 좋지 못합니다.
방도 작고 오래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인터넷 사용이 굉장히 불편합니다.
한국에서 사전조사를 할 때는
비교적 인터넷 사정이 좋은 곳인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해서 겪어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불편합니다.

우리가 묵는 층에서 안내를 하는 아가씨가 영어를 잘 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호텔 프런트의 안내를 제외하고, 이곳에서는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무엇 하나를 하려고 해도 막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짜겠습니까!
낯선 땅을 찾아 나선 처지에, 현지 말을 못하는 우리가 문제지
여기에 살면서 영어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을!

여기까지 성공적으로 도착한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해야지요.

..........

숙소에서 짐을 풀고, 거지꼴이 된 몸을 정갈히 하고,
우리는 오후에 바이칼 호수 구경을 갔습니다.

(아름다운 바이칼 호수는 쫌 있다가 다음편에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