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SK, K리그연맹, 그리고 포항스틸러스에 고하노니...

2006. 2. 23. 16:17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부천의 연고지 이전 사태를 접하면서
매우 허탈하고 배신감마저 느끼게 되더군요.
저는 포항의 팬이고, 포항은 연고지를 이전할 일이 없겠지만
부천의 일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부천과 저와의 일말의 인연이라면, 초창기부터 목동 운동장에 모여서
함께 축구를 보고 즐기던 형이나 동생들이 부천 서포터로 또는 붉은악마의
일원으로 지금까지 계속 안부정도는 주고 받는 사이...
그 정도가 다겠지요.


제가 느낀 배신감은 연고지를 이전해서가 아닙니다.
구단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연고지를 이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그러나, 부천의 일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팬들의 존재에 대한 의식이 과연 이정도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단 부천뿐만 아니라
리그를 관할하는 연맹, 그리고 그 연맹을 구성하는
포항을 포함하는 다른 구단들 또한
자기 팀을 지지하는 팬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요.
말로는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여러분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축구에 공헌한다는
칭찬을 많이 듣습니다.


서포터에게 있어서 자기의 팀은 고향입니다.
저는 감히 포항 스틸러스가 저의 축구고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냥 스틸러스의 팬이 아니라 '포항' 스틸러스의 팬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은 서울에 있지만, 결코 서울 스틸러스를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포항과 스틸러스가 하나로 묶여서
제 마음속에 고향처럼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눈을 돌려서
연고지 이전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포항의 팬이라고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만약 우리가 부천팬의 입장이었다면 어땠겠습니까?


설사 연고지를 이전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아무런 공론화나 상의도 없이 이런식으로 연고지 이전을 결정하고
공포하는 것은
아무리 우리나라의 축구팬이 적고, 그 힘이 미비하다 하더라도
팬으로서는 엄청난 모멸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이전을 할 때 하더라도, 심한 반발이 예상되더라도
양해와 이해를 구하는 노력과
그 문제를 오픈하고 공론화하는 자세는 가져야지요.
그리고, 프로축구연맹이나 다른 구단들은 그 문제를 지적해야지요.


너나 할 것 없이 고객 고객... 고객중심의 마케팅 어쩌구 합니다.
팬이 있어야 프로축구가 발전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팬이라도 소중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팬들이 그 팀을 사랑하는 만큼 팬을 사랑해 달라고 조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의 매너....
그 팀을 10년 넘게 지지했던 사람들
비록 몇 번 축구장을 찾지는 못했더라도 그 팀을 자기 지역의 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매너는 지켜야지요.


절대로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포항이 연고지를 이전한다면, 스틸러스 또한 서포터스를 비롯하여
포항시와 시민, 포항의 축구인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이전사실을 발표하겠습니까?


아니겠지요...
이전의 이유와 불가피성을 이야기 하고, 양해를 구하고,
거듭거듭 사과하고, 조금이라도 지금까지 그 팀을 아껴준 팬들의
허전함을 위로하기 위하여 최선의 자세를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연고지 이전에 찬성은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식의 결정과 발표는 아니라는 점을
다른 구단들과 연맹만큼은 지적을 하고 말렸어야지요.


지금 이순간 가장 큰 실망과 허탈감에 쌓여 있을 부천 서포터들을
포항의 서포터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천의 팬이기 전에  K리그의 팬이며 축구팬입니다.
팬의 존재, 그것도 소위 서포터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구단 입장에서는 꼬랑지 하나 자르는 일일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의 고향을 잃었습니다.


어제는 지인들과 함께 술을 좀 마셨습니다.
제가 축구란 것을 좋아한 이래, 그리고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서
서포터란 이름으로 또는 붉은악마란 이름으로 축구장을 기웃거린 이래
한국 축구에 가장 크게 실망하고
또한 가장 크게 분노한 날이었습니다.


장사 잘 되는 앞 가게만 쳐다보지 말고
우리 가게 찾아오는 한 사람의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99년에 학교 선후배들과 창업을 해서
지금까지 6년을 함께 고생하며 회사를 조금씩 키워가고 있습니다.
비록 고생되었지만...
저희는 몇 달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단 하나의 고객사에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몇 년을 버티었고....
그리고, 작년부터는 단지 저희 회사의 이름만으로도
고객들은 저희를 믿고 일을 맡기며 저희 회사의 제품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술 한잔 하면서 고생되던 시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물론 저희 제품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크지만
그보다는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고객을 소중하게 여겼던
구성원 모두의 하나같은 마음가짐이 가장 큰 재산이었다고 우리는 말합니다.


단 한명의 팬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의 매너를 지키는 정중함이 없이는
프로축구의 발전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