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모스크바에서 바르샤바까지

2006. 6. 11. 09:58월드컵 여행 - 2006, 독일까지 유라시아횡단/8.바르샤바(폴란드)

바르샤바까지 왔으니
6월 12일에 프랑크푸르트 입성까지는 8부 능선은 넘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8부 능선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모스크바에서는 허브 민박에서 입에 잘 맞는 음식과
주인장 내외분의 도움 덕택에 편안하게 지냈는데...

바르샤바행 열차를 타려는데 차장이 갑자기 티켓이 잘못되었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티켓을 담는 봉투(아님 껍데기?)라고 생각해서
인철형 티켓을 내 봉투에 같이 넣어서 가져왔는데
그게 봉투가 아니라 티켓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철형 티켓이 없다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차장이 괜히 트집 잡은 것 같습니다.
그 봉투 안에 차칸 번호와 좌석 번호까지 찍힌 티켓이 있었으니까요.)

뭐... 암튼...
현지 정보에도 어둡고 말도 안통하는 상황이라서
허브 민박에도 도움을 전화를 해 보고, 우리 짐도 다시 한 번 뒤져보고...
우왕좌왕...
다른 승객들은 이미 다 탔고, 열차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
차장은 계속 우리한테 주절주절 이야기 하고...

이것저것 주섬주섬 찾으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계속 플랫폼에서 개기면서 곤란해 하니까
지들끼리 뭐라고 서로 이야기를 하더니
출발시간이 되니까 결국은 열차를 태워 주더군요.
(아... 이 기분 정말 모를겁니다. 러시아에서는 고객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별로 없고 러시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리 만들어진 서비스의 틀에
고객이 맞추는게 그곳의 스타일입니다. ^^)

휴...
일단 열차를 탔으니까 어찌 되었든간에 목적지인 바르샤바까지는
갈 수 있겠죠?
이제 좀... 우리도 무작정 덤비는 깡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열차를 일단 타면 최소한 출국 심사를 하는 국경까지는 가거든요.

열차가 출발을 하고, 허브 민박에서 준비해 주신
유부초밥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침대가 3층으로 된 3인실에 자리를 잡았는데, 러시아 학생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3인실 구조 외에도 지금까지 이용했던 중국, 몽골, 러시아 열차와 달리
객실마다 220v 전원 단자가 있었고
화장실이 비어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을 포함한 여러가지 표시등이 있었습니다.


근데, 우리와 함께 객실을 사용한 러시아 친구....
그래도 띄엄띄엄 영어가 되는 친구라서 여행 내내 우리가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차장이 이야기한 것 번역도 해 주고
같이 음식도 나눠 먹고
우리 대신 다른 러시아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봐 주기도 하고...

다 좋았는데...
이 녀석이 바르샤바 도착한 다음에 자기가 묵을 숙소를
왠 이쁘장한 여자한테 물어보더니, 그 여자가 직접 안내를 해 주겠다고 하니까
우리는 본체만체하고 그냥 가버리는거 아닙니까?

완전히 쌩까고 가는 분위기...
처음에 좋던 이미지 다 망가졌고... 우리는 이때부터 이 녀석을 '러시아 싸가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러시아를 벗어나서 벨로루시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벨로루시로 들어갈 때는 별다른 검사나 제한이 없답니다.
벨로루시를 빠져나갈 때 러시아 출국이 함께 처리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창밖을 보아도...
이게 말만 벨로루시지 러시아와 풍경이 똑같은겁니다.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달리던 시베리아 평원과 다를게 없더라구요.

러시아 싸가지가 말하기를 자동차 번호판이 틀리다고 하더군요.
그제서야 철로변의 자동차를 보니 우리가 벨로루시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습니다.

벨로루시 번호판러시아 번호판

.....

한참을 달리던 열차는 벨로루시의 폴란드 접경 도시인 브레스트에 멈추었습니다.
여기서 러시아 출국 및 벨로루시 통과 검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에 몽골로, 몽골에서 러시아로 이동할 때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별다른 무리 없이 검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검사관이 인철형 얼굴이 여권과 다르다면서 뚫어지게 몇 번이나 훑었음.^^)

우리가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토록 애를 먹었던
벨로루시 통과 비자가 찬란한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브레스트에서 특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러시아 철로와 폴란드 및 유럽의 철로가 서로 틀리기 때문에
열차 바뀌를 갈아 끼워야지 폴랜드로 들어갈 수가 있답니다.

도대체 열차 바퀴를 어떻게 바꾸는가 궁금했는데
객차를 살짝 위로 들어 올려서 아래의 바퀴 부분을 통째로 빼낸 다음
새로은 바퀴 틀로 교체를 하더군요.
한 시간 넘게 작업을 하더니 열차의 바퀴틀을 새것으로 갈아 끼웠습니다.

객차가 살짝 들어올려진 상태.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바퀴 몸체입니다.


...........

바퀴를 갈아 끼운 후에 열차는 국경을 넘어 폴란드의 테레스폴에서 멈추었습니다.
이제 폴란드 입국 수속을 받는 거죠. ^^
한국에서는 무비자로 폴란드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별다른 심사 과정 없이 입국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월드컵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국경이라는 것이 우리 뇌리에 박힌 것처럼 철책선과 군인, 비무장지대가 있는
살벌한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작은 강 하나만 건너면 거기가 폴란드입니다.
인접한 양쪽 나라의 국경 도시를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채 10분도 안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살벌한 분단의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벨로루시를 뒤로하고 폴란드의 땅을 달리고 있습니다.


..........

폴란드라고해서 경치가 확 바뀌겠습니까?
벨로루시 바로 옆에 붙어 있는걸....
폴란드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시베리아 평원과 비슷한 모습이 펼쳐집니다.

다만, 농가의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집의 모양이나 재료가 틀리고 농부들의 모습도 약간 다릅니다
좀 직설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폴란드 농촌이 러시아나 벨로루시 농촌보다 더 잘사는 것 같고
고생스런 시골 분위기 보다는 좀 더 여유롭고 목가적인 분위기였다고 할까?


........

폴란드가 아무래도 러시아보다는 좀 더 선진화된 것 같습니다.
기차역에서 외국인에게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우리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상식적인 서비스들이 잘 제공되더군요.
(상식적인 서비스... 이거 생각보다 엄청 좋은겁니다.)

바르샤바에 도착해서 환전을 하고 호텔에 와서 짐을 풀고
호텔 창밖으로 바르샤바의 풍경을 보니까 기분이 아주 상쾌했습니다.
이제 프랑크푸르트에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들고
그동안 언어 문제와 문화적 차이를 포함한 이런저런 어려웠던 순간도 떠오르고...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 바르샤바...
호텔 지하에 있는  Pub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면서 아르헨티나와 코드디브아르의
경기를 보고...
지금은 창 밖으로 야경을 보면서 바르샤바의 아름다운 밤을 즐기고 있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