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르세유, 그리고 스타드 오대영

2016. 6. 16. 15:57색다른 축구 직관 여행/EURO 여행 - 2016 프랑스

뭘 쫌 아는 마르세유

리옹에서보다 유로 분위기를 물씬 풍길 수 있었습니다. 리옹에서는 시내를 메우고 활보하는 벨기에 애들을 통해 유로를 느낀게 전부였다면, 마르세유에서는 도심 곳곳에서 다양한 Euro 2016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수 많은 알바니아 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붉은색과 검은색의 강렬한 깃발의 알바니아! 마치 포항처럼 말이지요^^ ㅎㅎ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왔는지는 모르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시내 곳곳, 해변, 술집을 총 망라해 온 통 알바니아 팬들이었습니다.


도심 곳곳에는 경기장 가는 길, 팬 존(팬 페스트) 가는 길, 주차하는 곳 등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잘 보이게 설치되어 있었고 여러가지 조형물이나 플랙 등을 손쉽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작은 것들도 축구팬들에게는 마음을 들뜨게하는 재밋거리들입니다. "내가 유로를 보러 왔구나! 여기가 마르세유구나!"라는걸 느끼면서 적잖이 기분이 Up됩니다. (네네... 좀 돌려서 말하는거지만 리옹에서는 그런 기분이 다소 칙칙했다는 말입니다.^^)


마르세유에도 두 개의 팬 존이 있습니다. 하나는 도심의 옛 항구가 있는 광장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경기장과 가까운 바닷가! 그리고, 팬 존과 경기장을 연결하는 Fan Walk라는 거리를 제공했습니다. 9시를 경기를 위해 오후 3시부터 차량을 일부 통제하면서 구 도심의 팬 존, 바닷가 팬 존, 경기장을 도보로 오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실 마르세유 구 도심에서 경기장까지 걸어서 가기에는 만만치가 않습니다. 해변 팬 존에서도 경기장은 꽤 멀구요. (해변 팬 존에서 경기장까지 직업 걸었습니다. 그것두 왕복으로... 걸을만 하지만 먼건 먼거고 줄라리 다리 아팠습니다. ㅎㅎㅎ)

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Fan Walk라는 개념과 장치는 재밌고 신선했습니다. 경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수 만명의 팬들이 도심에 나타납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도 꽤 됩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팬들도 계속해서 걸어가는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경적 빵빵, 응원구호 샤유팅, 괴성 지르며 사진찍기, 예쁜 아가씨하테 작업걸기... 머...^^) 주변 식당과 펍에는 축구팬들이 가득하구요. 경찰들 잘 배치돼 있고 곳곳에 간이 화장실도 설치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Fan Walk라는 것은 걸어서 가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오늘 이 일대는 너희들의 거리니까 재미있게 놀아라~"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월드컵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놀기 좋은 대회할 때 마르세유의 Fan Walk을 도입하면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Fan Walk를 걸으면서 도로 바닥에 새겨진 요런거 읽는것도 재밌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도로 표지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대회 준비 섬세하게 잘 한거같죠? 진짜 뭘 쫌 아는 마르세유입니다~




팬 존에서만 사용 가능한 토큰도 재밌습니다. 처음엔 좀 귀찮고 짜증이 났는데, 이렇게 토큰을 쓰니까 맥주나 음식 주문할 때 엄청 빨라집니다. 토큰 3개 주면서 "비에흐(Biere, 맥주)"하면 바로 한 잔 딱!

쓰고 남는거 애매하죠? ㅎㅎ 그건 기념품으로 챙겨와야죠^^ (토큰 하나 2유로)


그리고, 지난 브라질 월드컵부터 재밌는 소일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개최도시 이름이 새겨진 맥주컵!

파리랑 리옹에서 깜박했던거 마르세유에서는 제대로 챙겼습니다.^^



2016.06.15, 프랑스 vs. 알바니아, 스타드 오대영

우리가 네덜란드에게 5대0으로 깨졌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그 때 그 경기장이 바로 마르세유  스타드 벨로드롬 (Stade Velodrom). 당시의 우리같은 초짜 팀 알바니아가 홈 팀이자 (무늬만) 우승후보인 프랑스와 맞붙은 그 경기장입니다. 제가 마르세유 간다고 했을 때 축구 쫌 보는 주변의 지인들도 젤 먼저 꺼낸 말이 "오대영" 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 때는 정말 처절했거든요.

그 경기장에서 프랑스 서포터들과 함께 경기를 봤습니다. 골 때 뒤에서도 더 뒤에서도 맨 꼭대기쯤... 이것이 4등석^^ ㅎㅎ




1998년 당시 저는 현장에 없었지만 대충 그림이 그려집니다. 스타드 벨로드롬 경기장의 좌석이 67,394개라면 그 중에서 67,000개가 상대팀인 셈이죠. 경기 내내 처참하게 밀리고, 큰 스코어로 깨지고...

이게 참... TV로 보는거랑 현장에서 느끼는거랑 완전 다르거든요. TV로 보는 사람은 TV 끄고 술한잔 할 수 있지만, 경기장에서는 상대의 함성을 바로 옆에서 들으면서 완전 찌그러져 있어야 합니다. 경기장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상대 팬들의 거만한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영혼없는 승자의 위로를 받으면서, 꽉 들어찬 지하철이나 버스에 몸을 끼우고, 이겼을 때보다 열 배는 더 아픈 다리, 땀 닦다가 문질러 버린 얼굴의 태극기 페이스 페인팅, 멍때리는 눈동자.... 

이건 뭐 영혼 탈탈 털리는 장면이죠. 수만명의 네덜라드 팬들 앞에서 오대영으로 탈탈 털린 대한민국 촌 놈 몇 십명의 기분이 어땠을지는 안봐도 뻔한 그림이지요.  

알바니아는 우리보다 잘 싸웠습니다. 고국에서 수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고 선수들이 당당하게 밀리는 경기를 했습니다. (표현이 이상합니다만... ㅎㅎ 당당하게 밀리더군요^^) 무엇보다도 그들은 Euro 2016과 그들의 경기를 제대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개최국 프랑스보다도 당당하게 밀리는 알바니아가 더 부러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 다시 우리 대표팀이 프랑스에 온다면 훨씬 잘할텐데... 우리 서포터들도 훨씬 재밌게 경기를 즐기고, 크게 함성을 지르고.. 설사 지더라도 당당하게 질 수 있을텐데...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너무 아쉬웠기 때문에, 그리고 이렇게 좋은 대회를 즐길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유럽 애들이 부러워서... 이 곳에 우리 팀과 다시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998년, 우리가 한없이 젊고 뚝심있던 그 시절로 다시 간다면 얼마나 재밌을까하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두 경기를 통해 살펴본 네 팀의 경기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탈리아 > 벨기에 >>>>>>> 프랑스 >> 알바니아

애매한 프랑스... 제법 잘 하기는 하지만 영점조정 안된 총들고 싸우는 느낌? ㅎㅎ

프랑스야.... 니덜 개최국 아님 우승후보 어림 없다~

지단 다시 델꾸와~ 

앙리 다시 델꾸와~~~~


PS) 경기에 앞서 대테러 치안 작전 중 순직한 프랑스 경찰관들을 애도하는 묵념이 있었습니다. 

Euro 2016을 즐기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네요.... 애도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