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전, 되감기

2012. 3. 1. 21:09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기존의 대표팀 경기와 조금은 다른 양상이었던 것 같죠?
우리의 경기력을 확인했고, 반면에 경기 내용은 살짝 롤러코스트 ^^

이래서 베테랑이 중요해!
최강희 감독은 감독의 축구가 아닌 선수들의 축구를 구사합니다.
선수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풀어나가야 할 부분이 좀 많은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선수에 대한 신뢰라면 신뢰고  뚝심이라면 뚝심인데...

최강희 감독은 경기를 지켜보면서 승부수를 띄우기 보다는 초반부터 최상의 멤버로 밀어 붙였습니다.
하지만, 경기 초반의 흐름은 우리의 예상과 매우 달랐죠.
(최강희 감독의 예상과도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 선수들에게는 시즌 첫 경기나 다름이 없었으니 그럴만도 하죠.
반면에 쿠웨이트 선수들은 충분한 준비와 최상의 컨디션, 그리고 자신감까지 갖추고 당당한 플레이를 했습니다.
우리보다 빨랐고, 예리했고, 더 저돌적이었습니다.

초반 예상이 빗나갔을 때, 어쩔 수 없이 우리 팀은 밀리는 경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경기에 밀리는 것이 진다는 말은 아니죠.
대부분의 경기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갈아타는 리듬이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경기력을 가진 팀은 언제든 전세를 뒤집을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베테랑들이 힘을 발휘합니다.
경기초반 밀리는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힘이죠.
한 발 더 뛰면서 상대방의 저돌적인 플레이에 맞섰습니다.
권투로 치자면, 상대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데미지를 최대한 줄이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간간히 공격을 가하는거죠. 비록 상대에게 밀리는 경기를 하지만, 상대가 편하게 일방적으로 때리지는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라운드, 두 라운드 넘기면서 자기의 공격 기회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그렇게 위기의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는 힘이 바로 베테랑들의 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선수들과 최강희 감독은 쿠웨이트가 우리보다 더 절박하고 초조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을겁니다.
공격이 먹히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겠지요.

실제로 후반이 넘어가면서 서서히 우리 선수들의 경기 템포가 쿠웨이트를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초반에는 이동국이 아래에서 넓게 움직였고 박주영이 최전방쪽에 포진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박주영의 몸이 풀리면서 활동폭을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단절되었던 공격도 점점 활기를 띄게 되었죠.

김두현의 고전은 눈물겨웠습니다.
공격을 전개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수비하는데 온 힘을 다 쓰고 말았으니까요.
김두현으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수비에 치중하면서도 수준급의 공격 전개를 함께할 수 없다는 한계를 노출하고 말았습니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수비진과 골키퍼도 잘 버텼지요.
비록 상대의 스피드와 개인기에 눌리면서 몇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상대 공격수들이 페널티 에리어 안을 제집 드나들듯 놔두지는 않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밀릴 때는 밀릴 수 밖에 없지만, 절대 호락호락 주도권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최효진의 오른쪽이 다소 불안해 보이긴 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수비가 불안해 보였지만 공격 지원의 문제가 더 커 보였습니다. 수비 본연의 문제가 아니라, 공격력이 떨어지다보니 수비 부담이 더 커진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효진은 수비형 윙백이 아닌 공격형 윙백에 가까우니까요.

후반 시작 5분, 하느님이 보우하사!

아찔한 순간이 있었지요? 상대의 예기치 못한 중거리 슈팅! 크로스바 강타!
정성룡은 좀처럼 직접 프리킥에 의한 골이나 중거리 슈팅에 의한 골은 허용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설사 그 슈팅이 크로스바 아래를 향했어도 정성룡의 방어력에 걸리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
언제나 깻잎 한 장 차이로 골이 판가름 나니까요.
우리로서는 전반 막판의 기세를 이어서 후반 주도권을 잡아가려는 시점이었으니...
그 시점의 가슴 철렁한 위기를 넘었다는 점은 하늘의 운빨이 우리쪽에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

그리고... 그 위기를 벗어나면서 다시 우리에게 주도권이 넘어오기 시작합니다.
반면 쿠웨이트는 점점 초조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전반전의 오버페이스 탓인지 점차 무뎌지는 움직임...
무리한 슈팅, 급한 플레이가 나오기 시작...

기껏 잡아놓은 경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뻔했으나.... 천만다행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겠네요.

김신욱, 그리고 기성용의 투입

한상운이 부진해서, 그리고 김두현이 부진해서라기 보다는 경기의 흐름에 따른 선수 교체로 보는게 맞겠죠?
두 선수 모두 제 몫을 다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선수 교체에는 부진한 선수나 부상 선수를 대체하기 위한 교체가 있고
경기 흐름에 따라 감독이 능동적으로 전술을 펼치기 위한 교체가 있을텐데...
이동국과 박주영을 둔 채 김신욱을 투입한 부분은 후자로 보는게 맞겠죠.
반면, 기성용의 투입은 둘의 중간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김신욱이 투입되는 시점에는 경기 흐름이 우리쪽으로 넘어오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최강희 감독이 승부수를 던진 셈이지요.
그 전까지 그토록 뚝심 있게 선발 선수들을 믿고 기다리던 감독이, 거침없이 칼을 뽑아드는 순간이기도 했고
선발 출전한 선수들만으로는 한계에 부딪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김신욱과 기성용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큰 체격을 바탕으로 강하게 몸으로 부딪치면서 상대를 괴롭혔죠.
(그들이 투입되기 전까지... 우리 선수들은 사실 지나치게 모범생 모습이었지요. ^^)
힘으로 밀어 붙이는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상대 수비에게 큰 압박이 되었을테고
반면에 이동국, 박주영, 이근호는 좀 더 순도 높은 골 찬스를 노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절묘한 선수교체(즉, 대체자 투입의 의미) 보다는
경기의 흐름을 읽는 선수교체(플러스 알파 만들기)였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공격 주도로 경기가 넘어오는 딱 그 시점에 공격력을 증폭시킨 셈이었고, 보기 좋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PS) 기성용, 김신욱이 끌려가던 경기를 반전시켰다고들 하는데 사실상 경기는 이미 그렇게 흘러갔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죠 T.T

우선, 측면을 살리는 플레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왼쪽의 박원재-한상운 라인에 비해서 최효진-이근호 라인이 다소 딸려 보였습니다.
이근호가 활발하게 움직였지만 상대에게 위협적인 크로스가 나오지 못했던 점은 아쉽습니다.

박주영이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한 부분도 문제입니다.
박주영은 절대적으로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이고, 반드시 활약을 해 줘야만 하는 선수입니다.
전반 중반 이후에 플레이가 많이 살아나긴 했지만... 출전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했던 한계까지 벗어 던지지는 못하더군요. 그래도, 90분 경기를 다 소화하면서 기본적인 자기 몫은 해 냈지만... 허정무나 조광래의 팀에서와 같은 역할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중심에 서 있던 선수가 어느날 변방으로 발령나는 바람에 재주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상황이랄까요?
빨리 최강희호에서도 자기의 확고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최강희 감독이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역할을 요구한다면 하루 빨리 최고의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자리 잡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가장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선수라는 점 또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좀 더 긴 연습의 시간의 실전을 통해서 막강한 이동국-박주영 조합이 만들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최강희 축구가 호주나 일본을 상대할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그들은 쿠웨이트에 비해서 훨씬 노련하고 경험이 많습니다.
상대를 밀어 붙이면서 끝내 피니쉬 블로우는 꽂아 넣지 못했던 쿠웨이트와는 격이 다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난 경기처럼 신뢰와 뚝심만, 그리고 베테랑들의 위기관리 능력만으로 넘기기는 힘들겁니다.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잘 준비하겠지요.)

우리는 더 강해졌는가?

위기의 순간을 잘 넘기긴 했지만 최강희호가 조광래호보다 강해진 것은 아닙니다.
조광래호가 못할 때보다는 잘했고, 조광래호가 더 나빠질 수도 있는 위기를 반전시키는데는 성공한 것일 뿐이지요.

이게 냉정한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이 어떨 것인가...
이제부터야말로 최강희 감독과 그의 신임을 받은 선수들이 능력을 보여 줄 시기라고 봐야겠죠.

9회말 1사 만루의 역전 위기... 병살타로 처리하면서 위태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고해서
다음 경기에서 우리의 전력이 더 상승할거라고 볼수는 없는거지요.

비록 실패했지만 조광래는 '만화축구'라는 꿈을 보여줬습니다.
최강희 감독, 그의 축구가 완성된 모습이 어떤 것일까...
이제 그 꿈을 보여주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닥공'은 캐릭터지 꿈이 아닙니다.

감독님... 우리를 꿈꾸게 해 주세요. ^^

다만, 한 가지...
이번에는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