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초원의 집

2013. 7. 30. 22:27사는게 뭐길래/볼거리먹거리놀거리

 

초원의 집 (전9권)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김석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05.09.25)

 

저와 비슷한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을 사람들...

매주 일요일 아침 MBC TV에서 방송하던 "초원의 집" 생각 나시는지요?

바로 그 TV 시리즈의 원작 소설입니다. 지은이 로라 잉걸스 와일더가 바로 TV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 로라구요. 그러니까, 소설로 쓰여지긴 했지만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네요.

 

우연히... 잘 아는 분(귀농인)의 블로그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겨울쯤에 읽었던 것 같네요)

미국에서는 어린이 권장도서라고 하네요.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들에게 많이 추천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40대 이상의 어른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TV속의 로라 잉걸스네 가족 이야기를 어렴풋이라도 기억하시는 분들께 강추!)

 

산촌 오두막에서의 생활을 시작으로, 초원을 개간하여 밭을 만들기도 하고, 사냥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미국의 서부 개척자들과 함께 철도 노동자의 삶을 살기도 하고... 로라 잉걸스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의 자매들, 그리고 결혼한 후의 이야기까지 한 가족이 겪어온 사랑과 개척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소박하게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던 가족이 더 넓은 세상과 땅을 찾게 되고, 그러다가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빌려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기계와 자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점점 다가가는 모습은 우리가 정신없이 달려온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되고, 더 큰 땅을 경작하게 되고, 더 많은 돈을 만지게 되지만...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은 사회 시스템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되는 로라 아빠의 모습은 우리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로라의 아빠는 매우 위대했습니다.

자기 손으로 밭을 일구고, 짐승들을 잡아 오고, 가족을 위해 손수 집을 짓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날 가족이 먹을 곡식을 구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홀로 길을 떠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마차에 짐을 가득 싣고 멀리 이사를 갈 때는 흙먼지와 거친 물살을 헤치면서, 때론 수레를 수리하고 들짐승들과 맞서면서 전진해 나가기도 합니다.

일을 마친 저녁에는 자기가 손수 지은 집에서, 자기가 손수 만든 난로 앞에서, 가족을 위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하지요.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아빠인가요?

가족들을 사랑하고, 가족들을 위하는 마음이야 똑같겠지요.

그러나, 로라의 아빠처럼 위대해 보이나요?

우리 아이들은 자연과 싸우고, 집을 짓고, 짐승들을 부리고, 가족의 위험 앞에서 있는 힘껏 저항하며 헤쳐 나가는 거인 같은 아빠를 본 적이 있을까요?

 

아마도 이런 거대한 존재감 때문에 예전의 아빠들은 그렇게 크게 집안에서 군림할 수 있었나 봅니다. ^^

지금의 아빠들은 참 존재감 없지요.

놀아주는 사람, 공부나 숙제 도와주는 사람, TV 채널권을 가진 사람, 밤에 술 마시고 들어오는 사람, 담배냄새 나는 사람, 잠자는 사람, 카드로 결제해 주는 사람, 운전하는 사람, 야단치는 사람, 엄마 남편, 직장 다니는 사람, 장난감이나 선물 사주는 사람....

 

ㅋㅋ 진짜 초라해졌네요.

아빠만 그런건 아니겠지요. 사회와 시스템이 많은 일들을 대신해 주면서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나 이웃들에 이르기까지... 강하고 위대한 인간 본연의 당당한 존재감은 더 이상 뿜어내지 못하는 것 같네요.

 

...

 

 

"초원의 집"은 미국 개척시대의 역사이기도 하고, 한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고, 또한 한 여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결코 약하지 않으며, 어떤 위기에서도 기지와 용기를 잃지 않으며, 잔대가리 굴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그러면서 웃음과 사랑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지요.

그리고, 그 속에는 힘있는 아빠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아빠보다는...

쟁기를 내리 꽂고, 망치질을 하고, 짐승을 능수능란하게 부리며, 추위와 눈보라에 맞서고, 젓가락부터 집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만들어 낼 줄 아는... 맥가이버의 할아버지쯤 되는 아빠가 되고 싶네요.

 

로라의 아빠처럼 말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