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싱크 정수기 - 직접 만들 수 있습니다!

2012. 1. 5. 23:02사는게 뭐길래/집짓기 & DIY

시골, 그것도 산골 마을에서 무언가를 새로 들이는 일은 하나 하나가 사람의 손을 많이 탑니다.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라서 지하수를 팠습니다.
그런데, 개발행위(토목) 완공 신고를 위해서는 지하수가 '음용'으로 허가를 받아야한다고 하네요.
지하수 공사를 마친 후에 이미 '비음용' 생활용수로 완공처리를 다 했는데...
완공을 하려는 시점에 '음용'으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니 난감할 따름입니다.

음용으로 허가를 받기 위해서 수질 검사를 했더니 망간, 알루미늄, 탁도 항목이 부적합으로 나왔습니다.
수질검사 업체와 지하수 공사를 한 업체에서는 탁도 수치가 높게 나타나면 망간, 알루미늄 수치도 함께 나오기 때문에 물을 좀 빼 내면 모두 정상일거라고 말하더군요.
실제로... 기준치보다 아주 약간 높은 수치가 나왔거든요.

그래도... 혹시나 모르기 때문에 정수장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망간이나 알루미늄 같은 중금속류를 걸러내기 위해서는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를 사용해야 한답니다.
참고로 정수기에는 중공사막식과 역삼투압식이 있습니다.
중공사막식은 물 속의 미네랄 성분을 보존해 주는 대신 중금속을 걸러내지는 못하고
반면 역삼투압식은 중금속을 걸러내지만 몸에 좋은 미네랄까지 다 걸러내는 단점이 있답니다.
그리고, 역삼투압식은 정수 과정에서 폐수로 빠져나가는 물의 양이 상당하기 때문에 물 낭비가 심한 것이 또 하나의 단점이구요.

어쨌든... 문제가 된 망간, 알루미늄 등을 걸러내기 위해서는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가 필요한데...
정수기라는 것이 가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렌탈을 해서 사용하는데... 이게 또 산간 벽지는 그런 것들이 수월하지도 않을 뿐더러
매년 20만원 상당의 렌탈비를 지불하기도 싫고...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더니, DIY(Do It Yourself)로 직접 정수기를 만들 수 있겠더라구요!
(제가 참고한 사이트는 '필터뱅크'입니다. - 여기클릭 -
전화로 몇 가지 물어봤더니 어찌나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던지... ^^)

20만원 정도의 DIY Kit을 구입해서 직접 만들기 돌입!

 

침전 필터, 프리 카본 필터, 포스트 카본 필터, 역삼투압 필터.
연결 호스와 각종 연결 부품들, 밸브, 케이스, 수조 겸 압력탱크 등이 포함된 Kit를 받아서
2~3시간 낑낑거리며 시행착오를 하면 별 무리 없이 조립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다면 1시간 정도에 모두 끝낼 수 있을 듯 ^^)

매뉴얼이 조금만 더 자세하고 친절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그 부분이 좀 아쉽네요.
하지만, 나사 돌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별 무리 없이 만들 수 있습니다.


 

필터를 다 연결해서 조립한 후, 싱크대로 연결된 수도 라인을 따서 정수기와 연결해야 합니다.
(연결을 위한 어댑터도 부품에 포함되어 있음)

마침 저희가 그 전에 침전필터(불순물, 녹물 제거용)를 먼저 설치했던터라 수도 라인에 한 번 손을 댔지요.
그리고, 몇 가지 연결 호스와 부품들을 이미 가지고 있었고요.
그래서, 먼저 설치한 침전필터 뒤에 새로 만든 역삼투압 정수기를 연결했습니다.
그러니까... 침전필터를 한 번 통과시킨 후에 역삼투압 정수기를 또 한 번 통과하도록 한 셈이지요.


싱크대 아래에 설치된 모습입니다.
사진 오른쪽이 먼저 설치한 침전 필터이고, 오른쪽에 있는 것이 수조겸 압력탱크와 필터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기 위해서 구입처의 연락처 및 담당자 명함, 조립도, 필터 관리표를 함께 비치해 두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죠?)

역삼투압 방식 정수기는 정수량이 적어서 따로 수조에 모아야합니다.
그리고, 수조에 모인 물을 위로 올려주는 압력이 필요하구요.
압력 모터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저희가 구입한 키트에는 수조 겸 압력탱크가 이를 대신합니다.
탱크 아래쪽에는 압력 가스가 들어있고, 탱크 윗 부분은 수조로 되어 있답니다.



요렇게, 깨끗한 물이 콸~콸~콸~
DIY Kit에 식수용 수전과 싱크대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드릴 비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기 드릴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건 직접 하나 장만하셔야죠... ^^)

식수용 수전 옆에 기역자(ㄱ) 모양으로 꺾인 하얀 호스가 보이죠?
이건 역삼투압 필터에서 정수하고 남은 폐수를 배출하기 위한 것입니다.
(폐수라고는 하지만, 마실 물로 부적합할 뿐 생활용수로는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직접 해 보니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네요.
(컴퓨터 프로그래밍 해 보신 분들... 'Hello World' 수준입니다. ^^)

어렵고 쉬운 것을 떠나서, 생활이 편리해지고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많은 재주를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도 척척 해내면서, 오히려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너무 외면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무슨 일이 조금만 늦어져도 짜증이 치솟아 오르고, 조금만 손에 익지 않은 일이면 덜컥 겁부터 나고,
뭔가를 만지작거리다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불같이 화부터 내고...

저만 그런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무언가를 직접 해 보는 과정에서 좀 더 느긋하고 차분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해 나가면 별 무리없이 다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또한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는 기쁨도 생기구요.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우리가 사는 치열한 직업의 세계는 그런 재미와 여유를 자꾸 빼앗아가는지 모르겠네요.
다음에는 또 무엇을 해볼까...

고민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