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한국 - 이건 전술이나 기량의 문제가 아녀!

2013. 6. 5. 13:12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기성용, 구자철의 공백 때문도 아니고 손흥민을 늦게 투입해서 문제도 아니다.

김신욱을 투입해서 높이의 확률을 노린 고공 플레이 전술이 문제도 아니다.

새로운 얼굴들로 대폭 바뀌어서 생긴 조직력의 문제도 아니도, 수비수의 설익은 기량 문제도 아니다.

골대를 세번이나 맞춘 더러운 운발이 약간 있긴 했지만, 그것조차 문제는 아닌것 같다.

골이 제대로 터지지 않았지만 골 결정력의 문제도 아니고, 기본기나 스피드 문제도 아니다.

비록 우리에게 문제가 그러한 문제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번 경기에서 만큼은 그것조차 문제되지 않는다.


그냥... 못했다.

어쩜 이지경일까 싶을만큼... 그냥 못했다.


레바논의 전력은 분명히 약했다.

한 골을 넣었고 간간히 스피디한 역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공격력은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만약 조금 더 수준있는 공격력이었다면 한 골만 넣지는 않았겠지!)

수비에 많은 숫자가 있었지만 공중볼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고 우리의 롱 패스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전력으로만 보자면 국가 대표가 아니라 포항 스틸러스가 레바논을 상대했어도 이겼을 것 같다.

아니, 황진성-이명주-황지수로 구성된 포항의 중앙 미드필더만 정상 가동됐어도 훨씬 나은 경기를 했을거다.

하물며 명색이 국가대표에 국내외에서 기량이 검증된 선수들인데...


이런 정도의 상대 전력이라면 누가 선발로 나가든, 어떤 전술을 사용하든간에 어제 같은 경기 내용은 나오지 않아야 정상이다.

이동국, 이청용, 김신욱, 손흥민, 이근호 중에 한 명은 골을 넣었어야했다.

김보경과 김남일, 한국영은 좀 더 깊고 넓게 움직였어야했다.

수비수들은 서 있거나 물러서지 말고 타이트하게 막아서면서 상대를 위로 몰아부쳤어야했다.


정말이지... 왜 그랬을까?


....


이길만한 전력 차이가 있는 상대였고, 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게다가 이겨야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겠지.

선제 실점을 하는 순간 상대에게 침대를 배달하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게임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겠지. 반대로 선제 득점을 하면 한 결 우리에게 유리하게 흘러갈거고...

홈 경기도 아닌 원정 경기의 핸디캡을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이 모를리도 없었을테고...


그런데... 이런 상황을 다 합쳐 놓으면 이게 또 이상한 상황으로 흘러간다.

선제 득점에 대한 압박감에 공격수들은 조급해지고, 미드필더들은 압박 보다는 공격과 침투에 치중하게 된다.

여기에 한 순간의 수비 문제로 예상치 못한 실점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더구나, 침대를 사랑하는 팀을 상대할 때... 우리 선수들은 정말 심하게 말려드는 경향이 있다.

(이젠 정말 침대 트라우마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상대팀 감독이 이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콕 찍어서 지적을 한 것 같다.


우리는 이기려는 마음, 더 정확히는 먼저 골을 넣겠다는 지나친 의욕과 자신감, 승리와 골에 대한 압박이 잘못 버무려지는 바람에 정작 가장 중요한 축구의 정석을 잊어버렸던 것!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야한다.

우리는 골을 넣어야하고, 상대는 못 넣게 막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제압하여 우리의 스타일과 방식이 먹혀들게 만들어야한다.

그래야만 과정이 있는 골이 만들어지고 예상 가능한 수비 패턴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를 제압하기도 전에 골부터 넣겠다고 덤벼드는 미숙함을 보이고 말았다.

그렇게 해도 골은 들어갈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

아니면, 그렇게 서둘러야만하는 조급함과 압박감?


설사 그런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축구는 그렇게하면 안된다.

이것은 마치 시험 문제만 잘 풀면 합격한다는 식으로 수능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학에 붙으려면 공부를 충실하게 하는 것이 먼저다.

마찬가지로, 축구 경기에서 이기고 싶으면 우리의 축구를 충실하게 하는 것이 먼저다.


전술이나 선수기용, 컨디션, 골대의 불운을 말하기 전에...

감독이 어쩌고 특정 선수가 어쩌고가 아니라...

 

기본적인 우리의 축구 자체가 미숙했던 것!

그게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