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Unfriendly한 조벅....

2010. 6. 18. 05:49월드컵 여행 - 2010 남아공/3. 요하네스버그

[6월 17일]

심하게 지고 말았네요... T.T
저희 가족 역시 아침부터 이리저리 부침이 많은 하루였습니다.

비교적 일찍, 9시 30분경에 숙소를 나왔습니다.
전날 오후에 Sandton(요하네스버그 북쪽의 부촌 내지 신도시 같은 곳) 중심부를 둘러 보고, 무료 셔틀버스 탑승 위치까지 알아 놓았기에... 아침겸 점심을 먹고 경기장으로 출발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날 알아 두었던 셔틀 버스 정류장에 가니 셔틀 버스가 없습니다.
왠 버스가 서 있긴 한데... 경기장(Soccer City)까지 1인당 130란드(2만원쯤. 그것도 편도!)를 내야 한다는군요.
옆에 있는 택시 운전수는 1인당 120란드에 모시겠다며 택시를 타라고 꼬셔대고...
이것은 셔틀 버스가 아니고 그냥 사설 버스였습니다.
조직위원회에서 나온 듯한 진행요원 찾아가서 이리저리 묻고 따지고 했더니, 다른 버스가 올거라고 하더라구요.

오기는 개뿔...
계속해서 1인당 130란드 짜리 버스만 보이고, 자원봉사자들이라는 사람들도 축구팬들을 그 버스로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팬들 아르헨티나 팬들 모두 슬슬 동요하고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축구 팬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못마땅한 것이지요.
일부는 1인당 130란드짜리 차를 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분명히 셔틀 버스가 있을 것이고, 반드시 있어야만 하고, 피파의 가이드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고 서로 말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서로 정보를 모아 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자원 봉사자의 말은 듣지 않고, 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사방으로 뛰면서 정보를 모아 온 결과...

무료 셔틀이 있을테지만 지금으로서 확실한 것은 없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는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고, 1인당 왕복 50란드짜리 시내버스가 있으니 그걸 타자는 걸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거의 빛의 속도로 주변에 있던 축구팬들에게 정보가 퍼지고, 사람들이 모여서 줄을 서기 시작하니까 순식간에 주변 정리가 되고 팬들이 버스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팬, 아르헨티나 팬, 기타 다른 축구팬들이 각개 전투로 움직인 결과죠.
이 과정에서 진행요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은 잘못된 정보를 줄 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외국 사람들 입에서 F로 시작하는 욕들 많이 튀어 나왔고, 한국 팬들은 택시타고 가면 갔지 저따위 바가지 버스는 탈 수 없다고 상당히 격앙되어 ㅆㅂ거리기도 했지요.)

암튼... 우여곡절 끝에 경기장에 도착!
이건 뭐 완전히 아르헨티나 팬들 일색입니다.
한국 팬들은 단체 관광버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경기장 안에서만 보일 뿐, 경기장 주변이나 버스에서는 별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경기장 안에서도 몇 개 그룹으로 나뉘어지기 때문에 응원이 너무 힘들고요...



Soccer City 경기장은 대단히 큽니다.
하지만, 시설과 서비스는 상암 경기장의 10분의 1도 못따라 간다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입장구 및 좌석 안내도도 잘 안돼있고, 안내도에 현재 위치 표시도 잘 안돼있고, 갈림길에는 방향을 안내해 주는 표지판도 잘 안돼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팬들이 우왕좌왕하면서 경기 진행요원들에게 달라 붙어서 물어보는데... 진행요원들 또한 능숙하지가 않고...
나중에는 팬들이 우왕좌왕하는 갈림길에 진행요원이 서서 큰 소리로 이리 가세요, 저리 가세요 하면서 구두로 안내를 하는 지경이더군요.
9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은 있지만, 그 많은 축구팬을 경기장까지 수송할 수 있는 교통체계와 경기장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못한 것이지요.

결국... 9시 반에 길을 나서서... 제대로 식사도 못한 채...
양국 국가 연주가 끝나갈 쯤 돼서야 좌석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헥헥...
처음 출발할 때 셔틀 버스 정류장에서 씨름하느라 보낸 시간만 1시간 반 정도였으니까요.

첫 골이 너무 일찍, 아주 안좋은 상황에서 터진 것이 제일 큰 패인이고
그 다음은 코칭스텝의 한 박자 늦은 대처와 선수들의 위기관리 능력이 1:4라는 큰 스코어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후반 15~20분경, 조금만 더 빨리 허정무 감독이 움직여 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니면, 선수들이 조금만 더 위기관리를 잘 해 줬으면 보다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 같네요.
우리 수비가 하염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운재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그리워해야 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강하기는 하지만 탱크처럼 돌진하는 메시와 이구아인을 향해 투지 넘치는 태클조차 날리지 못한 우리 선수들의 소극적인 경기운영이 너무 아쉽습니다.

...

경기를 마치고 다시 Sandton에 돌아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네요.
이곳 남아공은 지금 겨울이고, 해가 빨리 지니까요.
경기장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1 대 4의 패배 탓인지 남아공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보면 슬슬 눈을 피합니다. 패자에게 웃는 얼굴로 말을 걸기는 힘들테지요. (아... 지고 돌아오는 길.... 이런 분위기 정말 싫습니다.)



한 꼬마가 저에게 위로의 말을 보내주더군요.
"다음엔 여러분이 이길거에요. ^_^"
(요 이쁜 꼬마... 잊지 않을게요.)

숙소에 돌아와서 쭉 뻗어 버렸습니다.
아들놈은 나름대로 우리 팀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에 오늘도 편지 한 통을 쓰네요.
(요 녀석... 어제저녁부터 편지에 맛을 들인걸까요?)

대표팀의 박태하 코치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나이지리아 잡고 16강!

OK?

시상대의 1등이 한국, 2등이 아르헨, 3등이 나이지리아라고 하네요. ^^ 옆에서 웃고 있는 사람이 태하 아저씨래요. (17번. ^^)



PS) 방금 멕시코가 프랑스를 2대0으로 이겼습니다.
16강에서 멕시코 잡고 8강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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