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단호한 이탈리아. 극장골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2016. 6. 15. 14:27색다른 축구 직관 여행/EURO 여행 - 2016 프랑스

2016.0613, 리옹(Lyon)

경기장 가다가 미쳐 죽는 줄 알았습니다. 2시간 이상 여유를 두고 출발했는데도 겨우겨우 킥오프 맞춰서 입장했습니다. 일단 경기장이 디게 멀구요, 차량을 유도하는 도로 표지라든가 진행요원들이 턱없이 부족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유로와 월드컵은 그 규모와 조직, 동원되는 수준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겠죠.)

게다가... 인생은 만만디, 틀려도 "뭐, 그럴 수 있지"하는 프랑스 양반들 땜에 한국인의 빠른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더라구요^^


경기장 - 올렝피크 리오네 (Parc Olympique Lyonnais)

리옹을 연고로하는 올랭피크 리옹의 홈 경기장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위치 빼고 모두 좋습니다. 거의 제가 본 최고의 경기장이었습니다.

관중석고 피치 완전 가까워요. (저는 확장 공사한 스틸야드로 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ㅋㅋㅋ)

출입구 위치도 좋고 하프타임에 소변보는 줄도 완전 빠릅니다. 관중석도 비교적 넉넉한 편이고요 (넓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차... 나 1등석에서 봤지.... ㅋㅋㅋㅋㅋ) 

젤 맘에 드는건 음향시설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큰 소리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고 양팀의 국가도 잘 들렸습니다. (알아 들었다는 말 아닙니다.^^)


다만... 위치가 김포공항 쯤 되더라구요. 진짜루... 그만큼 머~얼리 있어요... ㅠ.ㅠ




가는 길 정말 개짜증이었습니다. 경기장 근처 고속도로 출구부터 완전 정체 시작. 이거까지는 그나마 익숙한데 전혀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차는 거의 제자리. 

막상 난관을 뚫고 경기장에 도착했더니 "여기 말고 Eurexpo 주차 후 셔틀버스를 이용하시오!"

저희가 오는 길에 있는 곳인데.... 경기장에서 꽤 멀던데... 앞에서부터 도로 표지라도 좀 해 주던가 대회 가이드에 좀 더 잘 설명해 줬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분명히 경기장 밖 어디엔가 주차장을 설치하고 셔틀 서비스를 해 줄것 같아서 이것저것 뒤져봤을 때는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없었거든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 예전처럼 강력한 보안 검색을 하는 대신 가방을 들고 입장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 핸드백 정도는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백팩은 입장 자체가 안됩니다. (물품 보관소는 제공함)
  • 이 과정에서... 열불딱지 확 오르게... 카메라 반입 안됩니다. 스마트폰은 문제 없고, 작은 카메라도 됩니다. SLR급 바로 제지 당하고 렌즈부분 좀 튀어나온 약간 괜찮은 디카도 안된다고 하더군요. (씨뱅이들... 145유로 내고 경기 보는데 사진도 제대로 못찍게 지랄입니다... 확 그냥...)
관중들에 대한 단속과 규정은 점점 강화되는 것 같은데, 이게 점점 축구 관전의 재미를 반감시키네요. 안전과 재미 사이의 균형추가 안전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습니다.
서포터들의 응원 물품 반입 제한에 이어 카메라까지 제한하다니... 니들은 뭐 관중 안해봤니?

월드컵이나 유로급 대회에서...
응원 깃발을 볼 수 없습니다. 붉은악마의 힘찬 북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없습니다... ㅠ.ㅠ


벨기에 vs 이탈리아

경기 시작하기 전 리옹 시내 분위기, 그리고 경기장의 관중 분위기는 완전 벨기에 였는데... 막상 뚜껑을 여니 이탈리아가 더 우세했습니다. 벨기에다 더 적극적이었지만 마지막에 서두르는 경향이 있고 결정적일 때 빠르게 치고 나가지 못하면서 찬스를 계속 놓쳤습니다. (운이라고 할 수는 없었죠? 분명 이태리가 압도!)




반면에... 이탈리아의 질식할것 같은 수비, 이탈리아만 만나면 상대팀의 모든 슛은 깻잎 한 장 차이로 벗어나거나 순간이동하듯 나타난 장애물에 걸립니다. 그리고, 그 공은 순식간에 상대 문전에 도달하지요.


이탈리아의 이 단호하고 견고한 수비와 가공할 순간역습은 경기 스타일이나 기술, 전술의 완성도 때문이 아닌것 같습니다. 모든 선수들은 90분 내내 공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며, 상대와 경합할 때는 1센티라도 더 공에 닿기 위해 몸을 집어 넣습니다. 시야에서 공을 놓쳤을 때는 굶주린 늑대처럼 공의 방향을 찾은 후 발이든 어깨든 가슴이든 먼저 들이밉니다.


역습의 찬스에서 그들의 움직임과 스피드는 가히 예술입니다. 사람의 스피드뿐만 아니라 팀 스피드를 말하는겁니다. 벨기에에 비해 월등히 빠르고 단호했습니다. 강하고 빠르고 정확한 패스, 그리고 낮고 빠르고 정확한 문전 크로스. 이 모든게 빠르기 위해서는 팀 전체가 단호하게 결정하고 빠르게 움직여야하며 또 많이 움직여야합니다.


유럽 vs 한국국대 vs K리거

여러가지를 비교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볼 터치가 제일 먼저 비교됩니다. 우리의 국대급 선수들은 일단 볼 터치 기술은 이탈리아나 벨기에에 못지 않습니다. 간결하고 부드럽고 정확하게 처리하고 볼을 간수하는 능력도 역시 국대답습니다. 일반 K리거들은 이 부분에서는 좀 차이가 커 보이네요. 빠른 공격전개가 잘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볼 간수가 어렵고 공을 거칠게 처리하기 때문에 발과 머리가 번잡하기 때문입니다. 국대가 되고 싶거든, 유럽에 가고 싶거든... 더 향상된 볼 터치 기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크로스는 어떤가요?

이건 뭐... 이탈리아가 답을 보여주네요. 교과서처럼 TV 중계에서 반복 반복 또 반복하는 코멘트!

"낮게 빠르게 정확하게"

K리거뿐만 아니라 우리 국대들과 많이 비교될 수 밖에 없습니다. 벨기에도 잘하는 팀이지만 모범답안지는 이탈리아의 것을 보는게 좋겠습니다.^^


다른 팀, 다른 나라의 경기를 보면서도 늘 포항 스틸러스를 떠오리게 됩니다.

문득... 최진철 감독은 이탈리아 같은 축구를 하려고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전의 포항 스타일...  스틸타카가 공 주변에 슬금슬금 포진하고 가깝게 가깝게 공을 건드려주는 스타일이라면, 최진철 감독이 원하는 것은 한 발짝 정도 더 거리를 두고, 거리가 조금 더 멀어졌으니 패스는 더 강하고 빠르게 처리하는거죠.

잘 안되죠... 많이 어려울겁니다. 제가 경기장에서 본 것은 포항이 단시간에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ㅠ.ㅠ 그래도 한 번 해봐야죠. 하면 또 되는게... 100점까진 아니래도 80점까진 어떻게 되는게... 그리고 그 80점으로도 어쩌다보면 전교1등도 하는게 포항 축구니까요^^


경기장 분위기는?


나무랄 데 없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장내 아나운서!

경기만큼이나 속도감 있고 간결한 진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비교적 자주 찾는 수원, 성남, 포항과 비교하자면...^^


포항

완전 아나운서 삘의 여자분. 낭랑 칼칼하면서 진정성 팍팍. 그러나, 남자 특유의 능글능글 거만함이 좀 아쉽더군요.


수원

경기내내 개입이 좀 많은 편인데, 빅버드는 어느정도 관중들과 서포터스, 장내 멘트가 정착된 듯 합니다. 벨기에:이탈리아 경기와 비교해보니 좀 더 빠른 템포로, 멘트는 좀 줄이고 진행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성남

머... 이 양반도 극한 직업입니다. "오늘의 우승팀은 누구?" 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포항"일 때가 많습니다. 머... 죄송합니다... 성남은 아직 관중과의 호흡보다는 정보전달을 하거나 원맨쇼형 장내 아나운서가 필요할 듯 합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킥 오프 카운트 다운!

킥오프 카운트 다운 메시지가 전광판에 뜨고, 장내 아나운서의 짧은 인트로, 그리고 바로 전관중과 함께 카운트 다운!!! 요거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컨셉... 아주 재밌었습니다. 홈팀 : 어웨이팀. 오프닝 할 때부터 좌우로 확실하게 구분해 줍니다.^^

왼쪽 벨기에, 오른쪽 이탈리아. 선수들 대기석부터 서포터 배치. 입장후 선수들 위치, 심지어 센터 서클의 유로 엠블럼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왼쪽 반은 붉은색이고 오른쪽 반은 푸른색입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유로 2016 엠블럼과는 색깔이 또 왜 이렇게 조화로운지^^)


국제 대회의 경우 점점 안전상의 이유로 이런 확실한 대결구도를 지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포터의 한 사람으로서 단호히 반대합니다. 

나의 색깔, 나의 소속팀이 확실한... 축구야말로 가장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팬들의 스포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