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에콰도르처럼 안될까?

2014. 6. 25. 19:57월드컵 여행 - 2014 브라질/7.쿠리치바

지난 6월 20일, 우연한 기회로 쿠리치바에서 열린 에콰도르:온두라스 경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경기 자체보다는 오랜 기간 알고 지내온 지인들을 먼곳 브라질에서 만나는 기회라는게 더 큰 이유였고, 경기 자체는 사실상 월드컵의 마이너 경기쯤으로 생각한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만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경기도 드무니까요^^


쿠리치바는 매우 잘 정돈된, 깔끔한 신도시 느낌이었습니다. 마침 숙소와 경기장도 매우 가까웠고, 도시 느낌도 좋아서 경기장까지 천천히 걸어가게 되었지요.


젤 먼저 눈에 띈 것은 수 많은 에콰도르 팬들이었습니다.

아니, 상파울루에서 쿠리치바행 버스를 탈 때부터 에콰도로 팬들을 심심찮게 보았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쿠리치바 경기장으로 가면서 보니 에콰도르 팬들이 상당히 많더군요.

행여 노란색의 브라질 사람들인가 하면서 다시 살펴봤지만 대부분 에콰도르 팬들이었습니다.



경기장 입구쪽에 장사진을 치고,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깃발을 흔들며 경기 분위기를 온통 에콰도르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온두라스이 팬들도 적잖이 왔을텐데... 장외 분위기는 이미 에콰도르의 홈 경기였습니다.







대형 깃발을 앞세우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에콰도르 팬들이 굳건하고 당당한 행진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참고로, 사진에 나오는 대형 깃발이나 응원용 북은 월드컵 경기장 반입이 안됩니다. 안전상의 문제 때문인지... 어떤 제한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안된답니다. 글쎄요...  이유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월드컵은 서포터의 북소리를 들을 수 없는 최초의 월드컵이 되었습니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 때의 부부젤라 같이 소리 나는 악기류도 일체 금지!

FIFA는 월드컵의 큰 재미 중 하나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붉은악마의 북소리도, 잉글랜드의 브라스밴드도 들을 수 없는 월드컵입니다.


하여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시위의 물결처럼 강인하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경찰과 마찰이 있었다거나 다른 불미스런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그들의 목소리로 최선을 다할 뿐이었고, 어쨌든 경기장 밖은 이미 에콰도르 팬들의 세상이었습니다. 맨 마지막 보안검색 라인 앞에서 제지 당할 때까지 그들의 행진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물론, 경기장 안도 에콰도르의 세상이었지요. ^^

약 2만명의 에콰도르 팬들이 경기장을 찾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천여명의 온두라스 팬들 또한 적잖은 숫자였지만 에콰도르 팬들이 워낙 많았습니다. 도대체 2만명의 팬들이 어떻게 브라질까지 날아 왔는지, 또 도대체 어디서 잠을 자고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 수 없지만... 2만명의 팬들이 쿠리치바 경기장을 찾았답니다.

시종 일관 열광, 열광!!!

그저 그런 경기일줄로만 알았던 마이너 경기였는데 그 열기가 정말 뜨거웠습니다.



양팀의 경기는 정말 멋졌습니다.

수 많은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에콰도르의 홈 경기장 분위기 였음에도 온두라스 또한 정말 열심히, 멋진 경기를 펼쳤습니다. 비록 그 실력이 브라질 같은 Top 팀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고 힘과 힘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멋진 경기였습니다. 정말이지 90분이 금새 흘러가는 그런 경기였죠.

온두라스도 에콰도르도 모두 월드컵 무대에 걸맞게 자신들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에콰도르는 두 말이 필요 없죠. 선제골을 허용했음에도 끝내 역전승을 이뤄내던 모습은 축구 경기의 백미죠.

수 많은 팬들, 상대팀을 압도하는 그들의 열정, 그에 어울리는 선수들의 뜨거운 투지와 집중, 상대팀의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 상대팀의 선제골, 그것을 뒤집는 함성과 치열함, 그리고 우리이 짜릿한 역전승으로 대미를 장식!!!


축구팬이라면... 이런 경기, 이런 내용의 축구, 이런 스토리가 팍팍 느껴지는 경기...

짜릿짜릿하죠? 느낌 팍팍 오죠?




경기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에콰도르 팬들이 펼치고 있던 플랙입니다.


그래요...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기에 이런 열정이 있는거지요.

그리고, 축구를 사랑하구요.

우리나라의 팬들도 마음도 마찬가지죠.


이번 월드컵에서 아직 한 번도 승리의 기쁨을 뿜어내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왠지 어깨가 움츠려지는 월드컵입니다. 다른 나라의 팬들이 알제리전 이야기를 하면 웃으며 받아주지만 속 마음은 무척 쓰립니다. 다음 경기가 벨기전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절래절래 흔듭니다.


에콰도르처럼... 경기 전부터 경기를 마친 후까지... 하루를 충실하고 빵빵하게... 온통 우리의 이야기와 함성과 승리의 거만함으로 하루를 꽉 채우고 싶네요.

상대가 강팀 벨기에지만, 꼭 좀 그렇게 해보고 싶네요.


그래도 말입니다.... 벨기에가 강팀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좀 예상했던 대로(?) 삐걱거리긴 하지만 말입니다...


한 번 칼은 뽑아야하는 월드컵 아닙니까?


이대로 돌아가서 다시 4년 기다리긴 싫다는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