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울란바토르] 황사를 뚫고, 초원을 지나

2006. 6. 1. 10:08월드컵 여행 - 2006, 독일까지 유라시아횡단/5.울란바토르(몽골)

6월 29일
저녁 6시에 출발하는 얼렌발 울란바토르행 685호 열차를 탔습니다.
일단, 얼렌에서 자밍우드까지는 열차표를 확보 했고
자밍우드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객실 안에서 차표를 구입하라는
안내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안내인이 손에 쥐어준 티켓 값은 1인당 2만 투그릭,
우리돈으로 약 2만원쯤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녁 5시경,
약간의 모래 바람이 부는 가운데 우리는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6호 객차의 11번, 12번 침대를 배정받았습니다.
플랫폼에서 우리 객차의 서빙을 맡은 차장들과 사진을 찍자고 했으나
끝까지 안된다고 해서, 옆 모습밖에 못찍었습니다.




객실은 2층으로 된 침대칸으로 한 객실에 4명이 들어갑니다.
작은 쿠션 하나와 담요 2장이 기본으로 제공되고, 시트는 추가로 1천 투그릭을 내야합니다.
객실은 좀 남루한 느낌이 나고 좁습니다.
창문을 3분의 1쯤 열 수는 있는데, 옛날 방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끌어 내리는 식인데
그리 쉽지가 않더군요.

우리랑 같이 방을 쓴 사람은 두 명의 몽골 청년들이었습니다.
스무살 안팍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이놈들 때문에 우리 신경 졸라리 쓰고 말도 못하게 피곤했습니다.
(여행내내... 이 녀석들을 '찌질이'라고 불렀죠.)

원래는 맘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랑 아주머니랑 객실을 쓰게 되었는데
그 분들이 일행과 같은 객실로 옮기면서 찌질이들과 표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생긴거두 아주 찌질이 같이 생겼죠?
이 녀석들 개념없이 계속해서 들락날락 거리고
우리 물건 허락도 받지 않고 막 만지고,
담배 한 대 줬더니만 그 다음부터는 우리 지들 맘대로 빼서 피우고...
진짜루 한 대 쥐어박고 싶더군요.

거기다가 용모가 아주 안좋았는데, 얼렌에서 만난 조선족 청년도 그렇고
울란바토르에 계신 분도 그렇고... 소매치기나 도둑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하도 들은터라
이 찌질이들이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사람들이 워낙 한국것이라면 신기해 하고 탐을 내거든요.

그리고, 이 찌질이 중에 한 놈은 밤에도 창문을 열어 놓는 통에
인철형은 찬 바람에 모래까지 마시게 되었습니다.

열차에서 찌질이만 만난건 아닙니다. 괜찮은 친구도 만났습니다.
제법 영어를 잘 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몽골 유도 대표선수로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참가 했었다고 하더라구요.

둘이 좀 닮지 않았습니까?



여행하는 내내 이 친구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차장이 알려줄거 있으면 이 친구가 전달해 주었고, 우리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 친구에게 물어보고... 하여간, 그 열차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뭐, 우리랑 방을 같이 쓴 찌질이들 빼고는 다들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았습니다.

......

열차가 출발하기 전에 중국 공안들이 객실마다 다니면서 여권과 신원 확인을 합니다.
이제 곧 국경을 넘어 몽골로 가기 때문이겠지요.
이런저런 조사를 하고, 6시 30분쯤 돼서야 열차가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천천히 한 5분이나 달렸나?
갑자기 거기서 열차가 서더니, 이번에는 몽골 경찰(군인?)이 열차에 타는겁니다.
그 5분 사이에 우리는 국경을 넘어서 몽골땅에 들어온 것이고
거기가 바로 자밍우드라는 곳이었습니다.

얼렌과 자밍우드가 가깝다고는 들었지만, 그렇게 딱 붙어 있는 줄은 몰랐죠.
열차가 자밍우드에 들어서자 마자, 이번에는 입국 심사를 하느라고 또 시간이 걸립니다.
신고서 작성하고, 입국 스탬프 받고, 세관 신고 하고...
이 모든 작업이 기차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런저런 검사가 다 끝난 시간이 저녁 8시. (대략 두 시간 걸립니다.)
느닷없이... 기차가 10시에 출발을 할 예정이니 두 시간 동안 쉬라고 하더군요.
이제 몽골에 입국을 했으니까, 열차를 내려서 다른 곳으로 가건
계속 열차를 타고 가건... 뭐, 몽골 내에서 알아서 할 문제지요.

객실에 있기가 답답해서 열차를 내렸습니다.
마침 우리나라 도시락 라면을 팔기에 살려고 했다가, 왠지 가격이 비싼 것 같아서
그냥 만두만 한 봉지 샀습니다.
(황당한 것은 역 광장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 100 투그릭을 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 때 갑자기 모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세상이 온통 모래속에 잠겨 버렸습니다.
불과 5~10분 정도 모래 바람을 맞았는데
세상이 온통 누렇게 변하고 앞을 보기도 힘듭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나는 황사가 안개라면, 우리는 소낙비를 맞고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모래가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고, 온 몸 구석구석이 모래 투성이가 된채
모래를 피해 객실로 들어갔습니다.

객실 위의 테이블 위에도 모래가 흥건하고, 얼렝 식당에서 먹다 남은 소고기 말린것을
담아 온 봉지 위에도 모래가 있습니다.
사람과 객실이 온통 모래를 뒤집어 쓴 꼴이지요.

그렇게... 객실에서 개기고 있자니 어느덧 출발 시간이 되었습니다.
차장에게 자밍우드에서 울란바토르까지의 추가 여비를 내고
드디어 본격적인 울란바토르행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가이드해 준 얼렌의 안내인 말한 가격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더군요.
우리가 너무 긴장하고 쫄아서 쉽게 믿지 못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사람 말대로 되었습니다.)


....

기차가 달리는 동안에도 황사 때문에 적잖이 고생을 했습니다.
북쪽이라서 그런지 저녁 10시가 되어도 바깥은 아직 그리 어둡지가 않습니다.
몸은 모래 먼지와 땀이 범벅이 되어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고
앞에 앉은 찌들이 들은 계속해서 신경 쓰이게 만듭니다.

기차가 출발하고 한 참이 되어도 여전히 창밖으로는 모래 바람이 날리고
보이는 풍경이라고는 모래가 날리는 사막과 지평선이 전부입니다.
해는 점점 저물어 가고... (밤 11시쯤 되어서야 어두워졌던 것 같습니다.)
이 황량한 사막을 15시간이나 달려야 한다니...
더구나... 끈적하고 모래가 서걱거리는 몸으로, 찌질이들과 한 방을 쓰면서 말입니다.


저의 긴 머리는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은 모래가 뒤섞여서 꼴이 말이 아니고
인철형은 침을 삼킬 때 모래가 넘어가서 고생을 했습니다.


밤새 버스에 시달리고, 얼렌에서는 초 긴장 상태로 한 나절을 보낸 탓인지
말할 수 없는 졸음이 밀려오더군요.
덥고 끈적거려서 쉽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잠을 좀 청해볼려고 2층으로 올라가 누웠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그대로 골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

어느정도 잤을까?
잠을 깨어 보니 살짝 날이 밝아 오더군요. 새벽 4시쯤? 5시쯤?
너무 추워서 잠을 일찍 깨고 말았습니다.

창 밖에는 여전히 사막과 지평선만 보이는데, 전날 밤에 휘몰아쳤던 황사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황사가 없어진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그리고, 새벽에 창 밖으로 보이는 넓은 벌판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더군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풍경이 어제의 고단했던 몸과 마음을 서서히 치료해 주고 있었습니다.



차장이 날라다 주는 홍차에 설탕을 듬뿍 넣어서 마시니
따뜻하고 달콤한 홍차에 몸이 싸악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황량한 사막은 점점 초원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울란바토르로 가까워지면 질수록
초록빛의 풀도 나타나고, 끝이 없던 지평선 위로 작은 언덕도 나타나고
약간의 눈이 보이고, 때로는 작은 물 구덩이도 보였습니다.
(전날 울란바토르에 눈이 내렸답니다.)

잠에서 깬 인철형을 보니 약간 노숙자 냄새가 풍겼습니다.
머리가 훨씬 긴 저는 보나마나겠지요. ^^
그래도, 전날에 비해서는 우리 둘 다 표정도 많이 밝아졌고
다시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옆 칸에는 가족이 탔는데, 엄마와 함께 창밖을 내다 보는 아기가 너무 예뻤습니다.
나중에... 내가 다시 우리 아들놈과 함께 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녀석은 그 강한 모래바람을 잘 견뎌줄까...


...

차창밖의 풍경은 점점 우리가 TV 화면이나 사진에서 보던 것과 같은
넓고 아름다운 초원으로 바뀌어 갑니다.
잠시동안이지만, 하늘도 맑게 개었고
어제 내린 눈이 산의 곳곳에 남아서 풍경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창문을 내리면 끔찍했던 황사가 아니라
시원하고 깨끗한 초원의 공기가 마구 밀려 들어옵니다.

'몽골' 하면 떠오른 말과 게르(Ger, 몽골 전통 천막집)가 보이고
작은 마을들도 나타납니다.

정말 아름다운 몽골의 초원을 바라보자니 어느덧 울란바토르에 도착!
출발할 때는 오전 11시경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오후 2시가 다 돼서야 도착을 했습니다.


우리를 마중나오기로 하신 박성완님은 오전 9시부터 역에서 기다렸다고 하십니다.
이쪽 열차편이 원래 그렇게 고무줄이라고 하시면서 저희를 반겨 주셨습니다.
매우 반갑고, 고맙고... 한 편으로는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비록 침대 버스에 시달리고, 낯선 국경도시 얼렌에서 초 긴장으로 하루를 보내고,
끔찍한 황사에 시달리며 달려왔지만...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초원을 보면서 울란바토르에 도착하니
기분이 너무나도 상쾌하더군요.

박성완님이 미리 준비해 두신 차에 올랐습니다.

"일단, 숙소로 가서 좀 씯으시죠?"

어이구 민망해라...
우리 꼬라지가 참 볼만 했겠죠?

그래도, 저희는 무사히 예정된 날짜에 울란바토르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몽골의 초원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고요.

창 밖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건 따로 올리도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