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찌히] 프랑스전 비화 - 아들녀석의 표를 구하라!

2006. 6. 19. 16:20월드컵 여행 - 2006 독일/4.라이프찌히


지금 6월 19일 아침입니다.
어제 워낙 힘을 쏟았더니 지금 몸이 욱신욱신 하네요.
교외의 한적한 호텔이라서 아침 새소리가 상쾌합니다.

그럼, 유쾌했던 이야기는 뒤로하고
어제 저희 가족에게 일어났던 살떨리는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저와 와이프, 그리고 아들 서치우!
잘못하면 우리는 경기장에 입장하지도 못할 뻔 했습니다.

경기장에 도착해서 모든 입장 수속을 마치고
경기장에 들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진행 요원들이 아기의 입장권이 없다며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입장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FIFA의 경기장 입장권 규정을 정확히 읽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저도 뭐라고 할 말은 없는 상태였고...
그렇지만 독일에서 지내면서 만 4세인 우리 아이는
모든 시설을 무료로 이용했기 때문에
저로서는 유독 월드컵 경기는 입장권을 사야 한다는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한국에 있을 때 워낙 제가 티켓을 여러 곳에 신청해 놓은 터라서
프랑스 경기의 티켓이 하나 남았는데
아이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티켓을 넘겨 주었거든요.

갑자기 세상이 깜깜해지고
저와 와이프 모두 어찌할 바를 몰라서 망연자실...
그냥 계속해서 진행요원들에게 항의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행 요원들의 말이, 4살이면 베이비가 아니기 때문에
티켓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베이비는 도대체 몇살까지냐고 하니까
1년 6개월까지는 베이비라고 하더군요.
자기들도 안타깝지만 FIFA 규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서...
저는 규정이 그렇다면 이해는 하겠지만
아무리 규정을 몰랐더라도 여기까지 와서 발길을 그냥 돌릴 수는
없지 않느냐며 무너가 방법을 찾아 줄것을 계속 요청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를 안내해 준 진행요원이 매우 친절한 아가씨였습니다.
우리를 남겨둔 채 자기가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우리가 입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더군요.

그러더니... 티켓 센터에 가서 남아 있는 티켓을 살 수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더군요.
티켓은 다 팔렸지만 혹시나 여분의 티켓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만약 거기서도 티켓을 구하지 못한다면
자기들이 경기 시간이 임박했을 때, 혹시나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아 보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뭘까요?)

경기 시작하기 약 2시간쯤 전이었는데
그 시간에 티켓이 있을리가 만무하지만
저는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티켓 센터로 달려갔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봐야지요.
(저희 좌석이 있는 Red Sector 입장구에서 티켓센터까지는
약 500미터쯤 됩니다.)

아내와 아이가 독일까지 온 것은
오직 이 한 게임을 함께 보기 위해서인데...
다시 아이와 함께 월드컵을 보려면,
그리고 아이에게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4년을 기려야 한다니...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지요.
저는 정말 단단히 각오를 했습니다.

티켓 센터에서 이곳 저곳 문의를 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티켓은 없고, 또한 FIFA의 티켓 규정이기 때문에
아이는 입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경기장에 시설이 잘 갖추어진 아기 보호 시설이 준비되어 있으니
거기에 아이를 맡기고 경기를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럴수는 없지요.
설사 제가 안보고 아이와 엄마만 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여기까지 날아온 것은 아이에게 월드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며,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면서
끝까지 좀 방법을 찾아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냥 안된다고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
내가 규정을 잘못 알았더라도 뭔가 Make-up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경기를 위해서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그냥 발길을 돌릴 수 없다...

그러나... 속수무책...
아이들과 여성을 크게 배려하는 독일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매우 안타까워 하는 눈치였습니다.

대한축구협회에 아는 분들이 있어서
급하게 전화를 해 보았지만 경기가 입박한 시간이라서 그런지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로밍폰을 가지고 있었는데 계속 전화를 해 봐도
독일어로 뭔가 안내 메시지만 나오고 연결이 되지 않더군요.)

...

저로서는 입장구쪽 진행요원이 말 한대로
티켓을 구하지 못하면 자기들이 마지막 경기시작 직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에 한 가닥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
티켓 센터의 진행요원에게 간단한 Letter를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써 달라고 한 내용은
제가 여차저차해서 추가 티켓이 필요해서 티켓 센터에 왔으나
추가 티켓을 없다는 내용을 간단히 써 달라고 했습니다.
최소한 제가 뭔가 최선을 다해서 뛰어 다녔다는 내용은 있어야지
마지막에 입장구쪽 진행요원에게 사정이라도 해 볼 수 있을테니까요.

편지 한 장을 손에 들고 다시 입장구쪽으로 왔습니다.

세상에나...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친 아기 엄마는 땅바닥에 힘없이 앉아 있고
역시나 지쳐서 피곤한 아기는 엄마에게 안겨서 잠을 자고 있더군요.
두 사람의 모습이 어찌나 안스러워보이던지...

더구나 입장구쪽 서비스 포인트에는 수십명의 한국 사람들이
와이프 근처에 몰려서서 뭔가 티켓 문제 때문인지
웅성웅성하고 있었습니다.

제 눈에 보이기에도
그렇게 불쌍하게 퍼질러져 있는 엄마와 아기를 입장시키지 않고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만큼 불쌍한 모습...

저는 티켓 센터에서 받아온 레터를 보여주면서
나로서는 최선을 다 했고 당신들이 자비를 베풀어 줬으면 좋겠다면서
그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

결국은... 잠시 후에 우리에게 입장을 허락해 주더군요.
그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걸 가지고 입장구의 검표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입장을 시켜줄 것이라고 하더군요.

휴...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 들었더니 되긴 되더군요.
와이프와 저는 표를 다른 시기에 다른 방법으로 구입해서
좌석이 서로 다른 블록에 위치했는데
마침 제 자리 옆에 일본사람(?)이 혼자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표를 바꾸고 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

경기 내내 환호하는 붉은악마와 함께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더 없이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행복하고 신나게,
소리를 함께 지르고 껑충껑충 뛰는 모습은
지금까지 제가 보아온 아이의 모습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Adidas 광고 문구 생각 나세요?

"Impssible is nothing!"

우리가 월드컵에서 프랑스와 당당히 맞짱을 뜬 것도 그렇고
아이와 함께 월드컵을 보고야 말겠다는 아빠의 마음도 그렇고...

불가능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아빠에게...
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요! ㅋㅋㅋ

바로 이 편지. 독일어를 읽을 수는 없지만, 이 편지 한장이 구세주나 다름 없었지요.


PS) 우리를 끝까지 친절하게 안내하고 보살펴 준 진행요원에게
붉은악마 머프러를 선물해 주려고 했는데
어디론가 바삐 가버리는 바람에 고맙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네요.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를 배려하는 모습은 우리가 배울 점이 많습니다.
제가 티켓 센터에서 돌아왔을 때
경기장의 독일 진행요원들은 잠자는 아이를 안고 앉아있는
아내에게 계속해서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뭔가 도와주려고 하는데
거기에 몰려 있던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앉아 있는 아이가 걱정될 정도로 와이프와 아이 옆으로
휙휙 뛰어다니더군요.

결혼해서 아기를 키워 보신 분들은 아마 제 심정을 아실겁니다.
여러분들도...
예쁜 여자만 특급으로 대우하지 마시고
아기와 아기 엄마를 특특급으로 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반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