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막걸리 담그기

2010. 11. 12. 21:47사는게 뭐길래/볼거리먹거리놀거리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편입니다. ^^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몇 잔 마시면 잠들어 버리는 체질...
그렇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많이 마시지는 못하는데... 그 대신 자주 마시는 편이지요.
맥주 1캔 내지는 막걸리 한두잔 정도를 상복(?)하는 스타일이랄까?

저는 맨 처음 술을 배운 것이 막걸리였습니다.
배웠다기보다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어른들 술자리에서 막걸리 한 모금 맛을 보거나
어른들 술상 나가면 부엌에서 몰래 한 모금 꿀꺽!

할아버지께서 술을 많이 좋아하셔서 집에는 늘 술이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막걸리를 아주 잘 담그시거든요.
중학교 때, 엄마가 빚은 막걸리 한 잔 제대로 마셨을 때의 알딸딸함은 지금까지 제가 마셔본 어떤 술보다도 좋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제대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는 막걸리가 아닌 맥주와 소주를 주로 마셨는데
몇 해 전부터 심심찮게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술이라면 입에 대는 시늉만 하는 우리 마눌님도 막걸리는 한 잔 마실 줄 알고...
그렇다보니 퇴근하는 길에 막걸리 한 병 사들고 들어가는 날도 꽤 많았습니다.

까짓거... 예전에 우리 엄마 손에서 빚어지던 그 막걸리 함 담가 볼까?

나 : "엄마, 막걸리 담그기 힘들어?"
엄 : "누룩 만드는게 힘들지... 막걸리는 일도 아니야..."

엄마의 한 마디에 용기백배!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져보니 마침 막걸리 만드는 재료를 파는 곳이 있더군요. (www.wine2080.com)
그리하야... 발효통을 비롯해서 재래누국과 효모까지 주문해서 막걸리를 만들었습니다.


일단, 막걸리를 담그려면 밥을 지어야죠? 햅쌀을 사서 깨끗하게 씻어서 고두밥을 지어야합니다.
백번을 씻어야 막걸리를 빚을 수 있다는 것도 옛말...
요즘은 도정을 잘 하고 쌀도 깨끗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백번이나 씻을 일은 없습니다.
그저... 깨끗한 물로 정성껏 바락바락 몇 번 씻으면 끝!

쌀을 4Kg정도 씻었는데... 이 많은 쌀로 밥을 지을만한 밥솥이 없어서 찜통을 걸어 놓고 밥을 쪘습니다.
고슬고슬한 밥이 꽤나 많았는데...


밥이 다 되었으면 어느정도 뜸을 들인 후, 30도 정도로 온도가 내려갈 때까지 좀 식혀야합니다.
중간중간 밥을 좀 뒤집어 주기도 해야 하구요.

밥이 어느 정도 식으면 누룩과 효모를 준비해서 밥과 섞은 후, 발효통에 넣고 생수를 부어줍니다.
(쌀 4Kg 기준으로 재래누룩 400g, 효모 10~15g 정도, 물 6리터)



자... 이제 술이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그러나, 그냥 무턱대고 기다리면 안되고... 약간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우선, 술이 발효되는 동안 20도~30도 정도의 온도가 유지되도록 담요로 잘 덮어줘야죠.
(마침 집에 널려 있는 것이 포항 스틸러스의 무릎담요군요 ^_^)

그리고, 처음 2~3일 정도는 발표통을 열고 아래위로 잘 뒤집어줘야합니다.
처음에는 밥이 물을 먹으면서 상당히 뻑뻑한데, 잘 저어주지 않으면 표면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는군요.



하루, 이틀, 사흘...
며칠이 지나면 뻑뻑했던 밥이 식혜 비슷하게 되면서 술냄새를 풍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뽀글뽀글 탄산가스가 생기고 "폭! 폭!" 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술이 익어가지요.
아래 사진... 기포가 보이시나요?

대략, 술 담근 후 7일에서 10일 정도.
이렇게... 술이 맛있게 익을 때까지 군침 꼴깍꼴깍 거리면서 꾸~욱 참아줍니다!
(빨리 맛을 보고 싶은 마음에... 생각처럼 쉽게 참을수는 없습니다. 중간중간 살짝 맛을 봐주는 재미...ㅎㅎ)

대략 열흘쯤 지나면, 드디어 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발효통에서 걸죽한 식혜같은 상태의 술을 떠서 거름망으로 걸러주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뽀오~얀 국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얻어진 뽀~오얀 국물!
일단, 그대로 한 잔 마셔보니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오는데... 생각보다 쓴 맛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 상태에서는 맛도 강하고 도수도 강하기 때문에 대략 1대1 정도로 물을 섞어서 희석을 해야 합니다.
첫날 내린 술을 마셨을 때는 머리가 좀 아프고 뒷끝이 있었는데, 다음날 마셨을 때는 괜찮더군요.

....... 그런데....
제가 얼마나 무식한 짓을 했는지 아시겠죠?
쌀 4kg에 물 6리터로 막걸리를 빚었고, 여기에 다시 1대1로 물을 부어서 희석을 해야 하니까...
무식하게도 막걸리를 10리터나 담그고 말았습니다! (생수 PET병 5개.... T.T)

어쨌든!
막걸리 거른 원액에 물을 섞어서 다시 맛을 보니 알콜 도수는 대략 비슷하게 나오는데 맛이 좀 맹맹합니다.
그냥 그대로 마시기보다는 단맛을 좀 첨가해야 제맛이 납니다.

설탕을 쓰면 발효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아스파탐이나 자일리톨 같은 비발효성 감미료를 넣어야하는데...
저는 그냥 희석된 상태로 보관해 놓고, 마시기 직전에 설탕을 넣어서 마시고 있습니다.
심심풀이로 설탕대신 꿀이나 시럽을 넣어서 마셔봤는데... 맛이 아주 좋네요. ^^

시중에 판매되는 막걸리에 비해서 투박하고 거칠지만 깨끗한 맛이 나서 좋습니다.
맨 처음 마셨을 때는 발효가 덜 되어서 머리가 좀 아팠는데, 하루 정도 더 묵히니까 머리도 아프지 않습니다.
발효가 덜된 술에는 머리를 띵하게 만들고 숙취를 남기는 성분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발표가 잘 된 막걸리는 전혀 머리가 아프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으니 재미가 있어서 좋고,
좋은 우리쌀로 내가 직접 빚었으니 자신있게 믿고 마실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이제 거의 다 마시고 1.8리터 PET병 하나 남았네요. ^^
그리고... 그 옆에서 약주(청주)가 함께 익어가고 있습니다. ㅋㅋㅋ ^^

우리 아들 녀석,

"아빠, 동렬당 막걸리야?"

ㅎㅎㅎ 국순당에서 힌트를 얻어서 바로 '동렬당' 막걸리라고 브랜드를 붙여주었습니다!
좀 더 자신있게 담글 수 있게 되면, 동렬당 막걸리로 초대 한 번 하겠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