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2011. 9. 6. 21:21사는게 뭐길래/난 그냥... 남자!

강원도 홍천군 내면 방내리.

제가 태어난 곳이고, 초등학교 1학년까지 지냈던 곳입니다.
매년 한 번씩 있는 집안 벌초 때마다 찾는 곳이기도하구요.
(지난 주말이 집안 벌초 날이었답니다.)

저의 증조 할아버지때부터 인연이 닿았던 곳이고,
저의 아버지와 삼촌들과 고모와 형과 누나, 그리고 제가 태어난 곳,
증조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 곳,
저의 아버지와 큰 삼촌은 그곳에서 선생님을 하셨고,
작은 시골마을의 1등은 놓치지 않았던 서씨 집안 수재들의 전설이 있는 곳. ^^

누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저와 초등학교 1학년을 함께 다녔던 누군가,
아니면 학년은 달라도 나와 운동장에서 공이라도 한 번 찬 적은 있을법한 누군가가
아직도 그 마을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도무지 아팠던 기억이라고는 없는...
마냥 행복했던 기억만으로 가득한 곳이지요.




지금은 율전초등학교 방내분교장라는 이름으로 서 있는 이 학교.
제가 다닐 때는 전교 4학급의 제법 큰(^_^) 학교였는데,
예전에는 몇 개의 분교를 거느린 초등학교였는데,
학교 운동회 날은 인근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잔치를 했던 곳이었는데...
빠르게 빠르게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버리고
지금은 교사 1명에 학생 1명뿐인 작은 분교입니다.
그나마, 1명의 학생을 끝으로 내년에는 폐교가 된다고 하는군요.

1년에 한 번... 집안 벌초 때문에 가끔 들러볼 때면...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학교는 옛날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어쩌면 내년 벌초 때는 운동장이 온통 잡초로 덮힌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태극기가 펄럭이고, 잘 정돈된 화단과 말끔한 운동장이 있는 학교의 모습...
어쩌면 제 눈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모습일수도 있겠네요.

많이 아쉽습니다.

제 기억에는...
'율전초등학교방내분교장'이 아닌 '방내국민학교'로 영원히 남겠지만 말입니다...

...........

방내에서의 몇 가지 기억들...^^

- 방내국민학교 1학년 1반 1번 이었음. 키 제일 컸고 달리기도 젤 잘했음.
- 1학년과 3학년이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했고, 1학년이 18명인가 19명 이었던 듯
- 1학년이었지만 도시락을 싸서 다녔고, 고학년 형들이 집에 갈때까지 학교에서 놀았음
- 학교 선생님인 아버지와 떨어지기 싫어서 입학하기 전부터 교실에 앉아 있었음
- 입학가기 전에는 책보(보자기)를 들고 다녔고, 입학과 함께 책가방을 가지게 됨
- 내가 춘천으로 이사 나오던 즈음에 전기가 들어올거라면서 전봇대를 놓기 시작
- 마을에 TV 2 대. 염동균이 세계 챔피언 되던 장면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시청했음
  (전기도 안들어 오던 시절이었는데.., TV는 어떻게 봤을까?)
- 마을 개울에서 어항을 놓다가, 어항이 깨지는 바람에 왼손 동맥이 끊어질뻔한 큰 사고가 있었고
  지금도 왼 손목에 커다란 흉터가 있음
- 선생님 아들인 나와 전도사 아들인 아무개, 순경 아들 아무개가 그 동네에서 젤 잘나가는 꼬마들이었음
  (나의 나와바리에 새롭게 등장한 도시풍의 전도사 아들을 때려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음)
- 아버지 빽 믿고 좀 까불고 나댔으며, 그다지 제지 당하지도 않았음
- 당시 '수련장'이라고 불리던 문제집을 푸는 1학년 아이는 나 혼자였음
- 당시 동네의 양대 인텔리는 사범학교를 나온 우리 아버지와 약방집 아저씨였으며
  약방집 아들이 동네의 1호 대학생, 우리 형이 동네의 1호 춘천고 진학생 이었음
  (명문 고등학교 입학했다고 할아버지가 개 팔아서 시계 사줬음 ^^)
- 우리집보다 잘 사는 집은 양지마을 부잣집과 약재 중개인 뿐이었던 것 같음.
  선생님은 아버지는 월급이 나왔고, 부지런한 농부였던 할아버지는 많은 땅과 밭을 일구셨기 때문임.
  전도사는 월급이 없었고, 순경은 땅과 밭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집보다 좀 꿀렸음^^
- 약재 중개인집... 방학때 서울에서 잘 차려입은 손주가 내려와서 우리들의 기를 죽였음
  자기네 학교는 1학년이 19반까지 있다고 자랑했음 (우리학교는 1학년이 딸랑 19명이었는데... 쩝!)
- 겨울철... 할아버지 따라 동네 사랑방 돌아다니면서 할아버지들이 남긴 막걸리 몰래 마시는 재미도 괜찮았음
- 할아버지와 함께 산속에서 약초와 나물을 캐고, 함께 도시락을 먹고,
  마법처럼 산 속에서 맛있는 것들을 찾아내시던 할아버지... 머루, 다래, 산비둘기알 등등등
- 나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은 뱀을 잘 잡았고... 동네에 군인들이 왔을 때 뱀 고기 얻어먹은 기억이...
- 생각나는 이름들... 상인이, 용이, 도희, 혁룡이형, 준호형, 윤철이(형이지만 그냥 윤철이라고 했음)

...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