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미어지도록... 황선홍

2006. 2. 23. 13:47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지금은 많이 없어졌겠지만, 그리고 황선홍 선수가 누구보다도 공을 잘 찼던 선수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이해하겠지만...
참 미움을 많이 받았던 선수죠.
황선홍처럼 축구를 잘한 선수도 없는데, 반면에 황선홍처럼 욕 많이 먹은 선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축구를 잘하는 선수인데도, 한때는 '똥볼'이니 '개발'이니 하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던 선수입니다.
욕먹으면서 공 차기도 힘든 판에 채 2년을 넘기지 않고 다시 찾아오는 부상 속에서도 10년이 넘도록 대표팀의 에이스였던 선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의 월드컵 첫승, 더 나아가 월드컵 4강 신화라는 큰 위업을 이루어낸 중심에 있던 선수!

저 또한 한 때, 황선홍을 많이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황선홍'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게됩니다.

축구 때문에 황선홍이란 선수를 알았고, 또 그걸 빌미로 황선홍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미워했던 황선홍을 보면서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으며, 그의 발끝으로 빚어 냈던 축구라는 경기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 인터넷이 아닌 PC 통신 시절에 하이텔 축구동에 올렸던 글을 여기에 다시 올립니다.



지금이 아니고... 전에 제가 전형적인 냄비였을때...
그러니까 바로 94 미국 월드컵때!

전국 냄비중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냄비 서동렬은
어김 없이 대표팀의 경기는 날밤 쳐가면서 보곤 하면서도
국내 프로 경기는 국제 경기에 비해서 스타도 없고 왠지 플레이 스타일이 투박해 보이는...
한수준 낮은 경기로 판단되었으며 나의 수준 높은 눈에는 영 재미가 없게 보였다.
그리고... 대표팀이야 내라 한국인이니 자연스럽게 동질감이 생기는데
프로팀이야 나랑 별 핏자국 비슷할 일이 없으니 애정이 생길리가 없지...

우여곡절 끝에 우리 대표팀이 미국땅을 밟았다.
그 우여곡절 과정에서,
일본 미우라에게 한골 먹고 나가 떨어지던날
나, 그리고 나와 함께 TV를 보던 패거리는 우리 선수들에게 무지막지한 욕을 퍼붓고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밟은 미국땅!
스페인전의 극적인 무승부로 인해 내 머리에는 영웅 서정원과 홍명보가 각인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황선홍에 대한 약간의 실망이 생겼고...

그 다음 운명의 볼리비아전!

그 경기가 끝난 후 나는 황선홍을 '황완용'이라 부르면서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과 동급으로 취급했다.
사람들 만나서 축구 이야기 나오면 황선홍 욕을 앞장서서 했댔다.
비록 마지막 독일전에서 멋진 골 하나를 뽑았지만
여전히 황선홍은 죽일놈이었고, 독일전에서의 골은 운이 좋아서 들어간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국민에게 실망만 주는 저 선수가 왜 계속해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는지 의심이 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축구시합 하다가 공 이상한데로 차면
"저거 황선홍이냐?" 하면서 비아냥 거리고...
하여튼 황선홍이란 선수는 내가 판단하기에 우리팀 선수가 아닌
적으로 보였다.

그러던 중,
아마 94년 가을일거다. 월드컵 끝나고... 아쉽지만 한국 대표팀에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면서 가을이 왔다.

나와 친구들은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시합을 한다.
1-2주에 한번꼴로 한판 붙는데, 그날도 축구 시합을 했다.
시합 끝나고 샤워하면서 (기숙사에 살기 때문에 공용 샤워실을 함께 사용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포항 전용구장 구경이나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나와 친구들은 학생이라는 신분을 악용하여 할일없이
시간 축내면서 낯술과 잡담으로 소일하는 부류였다.
취미 삼아, 여가 시간에 공부 좀 해 주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누가 뭐 하자는 의견 나오면 거의 따라가는 분위기다.
그래서... 부랴부랴 샤워를 끝내고 저녁도 거른채 급히 경기장으로 갔다.
경기가 이미 10분쯤 지났을 무렵에야 경기장에 도착했다.
길이 되게 막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축구장 가는 차들 때문에 길이 막힌거였다.
당시 나는 프로축구 보러 가는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경기장 도착해서 표를 끊고,
드디어 입장!

여기서, 바로 이 순간부터 나는 축구라는 화려한 세계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 때 그 순간의 감동을 지금도 있을 수 없다.

늦여름 밤의 전용 경기장!
밖에서 본 모습은 마치 커다란 UFO 같았다.
포항 경기장의 특징 중 하나가 조명탑이 없다는 것이다.
즉, 잠실 올림픽경기장처럼 경기장 지붕을 따라가면서 조명등이 달려있다.
그때문에 밖에서 경기장을 보면, 마치 거대한 UFO의 한 가운데서
밝은 빛이 위로 펴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시커면 경기장 윤곽과 대비가 되어 가운데가 유난히 환한 모습!
영화에 나오는, 방금 착륙한 UFO의 모습이었다.

(앗! 아직도 입장을 하지 않았군...)

밖은 온통 컴컴한 가운데 지하철 개찰구 비슷한 문을 들어섰는데
이것은 마치 UFO 안으로 발을 들여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환한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터진 시야에 녹색의 잔디밭이 깔끔하게 펼쳐져 있었으며
조명발을 받아서 그런지 색깔이 그처럼 고울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 새파란 경기장이 바로 내 코앞에 있었던 것이다.
걸어가다가 발이 걸려서 넘어지면 바로 그라운드로 엎어질것만 같았다.

우리 일행은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아마 서로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놀랍게도 경기장의 3분의 2쯤은 메워져 있었다. (약 1만 5천명쯤)
간간히 함성이 석여 나오고 약간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프로 축구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이런 흔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그 분위기 속에 휘말려 버렸다.

이내 경기장이 눈에 들어왔고 선수들이 하나하나 보였다.
선수들이 아주 가까이 있었다.
내가 들어간 문이 바로 포항 골문 뒤에 있었기 때문에 스위퍼 홍명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손에 잡힐 듯이 홍명보가 보인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그리고 저 앞쪽에 라데도 있었고 그토록 미워하는 황선홍도 있었다.

우리는 2층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한잔 하면서 경기를 보았다.
경기 내용도 스코어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그날의 감동만이 생각난다.

그렇게 처음 경기장을 찾게 되었고
그 때의 감동으로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별일 없으면 경기장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한 게임, 두 게임 보게 되었고
포항 선수들 한명 한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황선홍의 포지션 특성상 그의 발끝에 많은 찬스가 걸리기 때문에
그의 축구 스타일이나 기량 같은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게 된다.

황선홍이란 선수... 매우 잘하는 선수였다.
여전히 미움은 풀리지 않았지만 참 잘하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다른수였다.
그의 발끝에 공이 걸리면 나는 스탠드에서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실패할 때도 많았지만 그의 발과 머리로 꽤나 많은 골이, 멋진 골들이 만들어졌다.

한 구석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미운 구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그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처럼 그를 씹는 짓거리를 즐겁게 할 수는 없었다.
남들이 떠들면 쪼금 맞장구 쳐 주는 수준이랄까...

그렇게 94년 시즌을 보내고
95년 시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95년 시즌은 개막경기부터 챔프 결정전까지 포항 경기는 거의 다 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황선홍은 미움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중 하나가 되었다.
95년 코리아컵 음주 파동때 조차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그가 어려운 상황일때 걱정이 앞서게 되었다.
한국팀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면서
수 많은 지역 예선 라운드를 통과한 밑거름이 황선홍 선수였는데
왜 그것은 모르고 그의 실수만 크게 보였는지...

황선홍만이 아니라 포항팀의 모든 선수들이 그랬다.
94년 포항 전용구장을 찾은 이래, 채 1년도 안돼서 포항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잡지와 신문등을 통해서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무명의 고교 선수시절, 이회택 감독과의 만남, 그의 가족, 독일에서의 생활, 결혼...

그에 대한 슬픈 사연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아버지에게만 의존했던 이야기.
그리고 대표 선수가 되어 이름이 알려졌을 때 다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고...
하지만... 지난 날이 너무 미워서 재가한 어머니를 뿌리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던 일.
독일 선수생활 시절에 너무도 외로웠던 일과 무릎부상.
대표팀과 함께 독일에 전지훈련 왔던 홍명보 선수와 오랫만에 만나서
너무도 반가웠던 반면, 그가 떠나던 날 혼자 아파트에서 울었던 일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상대방을 잘 알기 전에는
밖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잘 못 평가하게 된다.
황선홍 선수도 그랬던 것이다.
나는 잘못하면 그 훌륭한 선수를 알아보지 못한채
마냥 욕이나 해 대면서 즐거워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등살에
황선홍 선수는 선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돌이킬수 없는 슬럼프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나뿐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를 불신했지만
그는 내 마음속의 스타 답게 굳건이 일어서서 더욱 담금질된 절정의
기량을 보여 주었다.

95년 한해는, 그렇게 멋진 황선홍 선수를 가슴속에 새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선수 욕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팀 욕하지도 않기로 했다.
아니, 욕할수가 없었다.
포항팀도 국가대표팀도 나의 모든 것이 돼 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팀을 이루는 모든 사람이 바로 나 자신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써 봤습니다.
또 황선홍 선수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 글을 볼수야 없겠지만 말입니다.